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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끌로델이 왜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예전에 영화로도 나왔는데 못봐서 내용을 잘 모르는데 까미유끌로델이 찬란한 비극을 품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서요. 대표적인 작품이나 어떤 인물이었길래 비극적이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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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풍족한듀공209
    풍족한듀공209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3년 까미유의 스승 부셰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로마로 떠나게 되면서 그의 제자들을 친구인 로댕에게 맡긴다. 이렇게 19살의 까미유와 43살 로댕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로댕은 까미유의 재능을 알아봤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20년 전, 그가 무명일 때부터 지원해주고 돌봐준 연상의 여인 로즈 뵈레가 있었다. 정식으로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둘은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며 둘 사이에는 까미유보다 두 살 어린 아들이 있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 마음. 접어도 접어도 커지기만 하는 그 마음은 결국 그를 고백에 이르게 만든다.

    그는 그녀를 통해 다시금 예술혼을 불태웠고 그녀는 그의 모델이 되고, 조수가 되고, 연인이 되었다.

    이 시기 까미유가 만든 작품아 '사쿤탈라'(고대 인도의 칼리다사의 희곡)이다. 여인은 지친 듯 힘없이 남자에게 기대고 있고 남자는 이제 아무 걱정 말라는 듯이 격정적으로 그녀를 껴안고 있다. 그녀의 심리적 의존 상태와 로댕의 그녀의 뜨거운 사랑을 암시하는 이 작품은 1888년 살롱전에 출품되어 극찬을 받으며 대상을 차지한다.

    1886년, 언제 다시 로즈에게 돌아가 버릴지 불안해하며 예민해진 까미유에게 로댕은 각서까지 썼다. 로즈와 헤어지고 그녀에게만 충실한 남자가 되기로.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헌신해온 로즈를 차마 버릴 순 없었다. 그런 채로 로댕은 둘만의 아지트를 마련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하고 창작을 했다. 까미유도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했지만 마지막 작품의 서명란에는 로댕의 이름만 들어갔다. 이 시기 그녀의 작품수가 적은 이유다. 막장 드라마의 단골소재처럼 로즈가 까미유를 찾아와 난리를 쳤다. 이 장면을 목격한 로댕은 까미유를 내버려둔 채 로즈를 따라 나선다. 게다가 까미유는 로댕의 아이를 임신하고 원하지 않게 아이를 유산하지만 로댕은 그녀를 돌보지 않는다. 혼자서 임신과 유산을 오롯이 겪어야했던 까미유는 그와 이별을 결심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중년'이다.

    이루 좋은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작품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녹여냈다. 전람회에 해마다 출품도 했지만 평론가들은 로댕의 아류로만 그녀를 폄하했다. 로댕의 명성은 쌓여가고 까미유의 존재는 잊혀갔다. 급기야 까미유의 출품작이 도난 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그녀는 로댕이 꾸민 짓이라고 단정 짓는다. 청춘도 사랑도 다 가져갔으니 작품도 가져갔으리라, 강박이 생겼다. 그가 성공할수록 그녀의 좌절은 깊어가고 술 없이 잠들기 어려운 밤들이 지나갔다. 몸도 마음도 망가져가며 점점 더 그녀는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은둔한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까미유는 자신의 많은 작품을 부셔버려 대다수가 소실되었다. 1913년, 그녀를 그나마 지켜주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들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넣는다. 49살의 나이에 정신병원에 보내진 그녀는 이후 사망할 때까지 30년을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와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