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조선시대의 내시들은 모두 거세를 하였나요?
조선시대에는 내시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내신은 모두 거세를 하였던 것인가요?
어떤 책에서는 거세를 하지 않았던 내시도 있다고 하던데 어떤 것이 맞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의 내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환관이라기 보다는 명문가 출신으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문관들 중에서 선발되어 대통령 비서실 같은 것이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내시는 환관이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시는 궁궐 내에 위치하여 왕의 일을도와야했기 때문에 궁녀를 비롯해 후궁들과의 만남이 잦았습니다. 만남이 지속되면 사랑도 싹 트이는 법이라 혹시나 그녀들을 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시들은 모두 거세를 시켰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내시들과 같은 경우에는 모두 거세를 하였고
그 이유는 왕과 관련된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 등을
맺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거세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문제가 되었기에
이후에 모두 거세를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시가 되려면 거세자만이 임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내시는 특수 사정 때문에 강제적으로 거세된 자, 사고로 거세된 자, 선천적으로 고자, 자궁자 혹은 준자궁자(準自宮者)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는 달리 궁형을 실시하였다는 기록은 없어 국가에서 강제로 거세한 경우는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사고로 인한 것은 주로 어린아이가 변을 보다 개에게 물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궁은 명주실을 어린 아이의 고추에 칭칭 감아 피가 통하지 않게 한 후 저절로 썩어 떨어져 나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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