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후기에 전래된 성리학은 새로운 지식 운동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려사회에서 불교에 대항하는 정치 이념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당대 고려의 현실도 송나라 사대부들이 직면하였던 그것과 매우 흡사한 점이 많았는데 그들은 몽고라는 이민족의 침입, 농업, 생산력의 위기, 불교의 현실 도피 등 기존 사회체제로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에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혁 세력으로 신진사대부가 힘을 얻어 갔고 비로소 성리학을 국시로 하는 조선이 건국될 수 있었지요 조선의 뿌리 내린 성리학은 사회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데 물론 짧은 시일 내에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선의 정치 체제와 사유 구조, 나아가 가족의 의미까지 그 내면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워낙 전면적이고 넓은 범위의 것이어서 어느 한 부분만을 특정하여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러한 사회 기저의 총체적 변화는 성리학이 지향하는 정치 이상으로 귀결되고 있었지요 그렇다면 우선 성학을 공부하여 성인의 경지에 오른 군주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 사람은 군주이며 동시에 만백성의 스승이 되는 존재로서 중국 고대의 문왕과 무왕과 같은 인물입니다 이러한 군주 밑에는 훌륭한 신하들이 있어야 하는데 신하들은 성리학을 충실히 학습하여 본연지성, 기질지성, 도심, 인심, 천리, 인욕의 문제를 깊이 성찰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실용적인 경세학에서도 밝은 사람이며 신하들 밑에는 만백성이 자리하고 있고 이들은 혼인을 통해서 가족을 구성하고 성리학이 제시하는 가족의 윤리에 따라 충실히 생산 활동을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면서 군역과 부세의 의무를 수행하고 친족과 향촌의 윤리 질서에도 귀속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