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이 물산장려운동 때 생긴 것이라는데 물산장려운동은 무엇이고 왜 일어났나요?
대구 서문시장 뉴스를 보니 물산장려운동 때 생겼다는데 물산장려운동은 무엇이고 왜 그리고 언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첫째, 의복은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를, 여자는 검정물감을 들인 무명치마를 입는다.
둘째, 우리 손으로 만든 토산품은 우리 것을 이용하여 쓴다.
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상용하되, 부득이한 경우 외국산품을 사용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을 한다.
그냥 소비 소비 절약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외산품을 사용하더라고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하자 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펼친 경제 자립 운동으로,
1920년 조만식을 중심으로 평양에 설립한 조선 물산 장려회를 계기로
서울의 조선 청년 연합회가 주동이 되어 전국적 규모의 조선 물산 장려회를 조직하고,
국산품 애용, 소비 절약, 자급자족, 민족 기업의 육성 따위를 내걸고
강연회와 시위, 선전을 벌였습니다.
1932년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명맥만 유지하다가,
1940년 조선 물산 장려회가 강제로 해산되어 끝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물산장려운동은 조선물산장려운동입니다.
당시 1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경제는 호황이었고 이 호황으로 인한 과잉생산때문에 일본은 식민지였던 조선을 이용하였습니다. 그전까지 한국은 식민지로서 일본 전쟁의 물자공급원으로 수탈당하고 이용당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일본에 있는 과잉 생산된 물건들을 소비해주는 대상으로 이용하려 한것입니다.
해서 여러 관세문제까지 철폐하고 조정하여 일본의 물건을 한국에 팔려고 수작을 부렸는데요 그렇게 일본산이 한국에 들어오게 될시 당시 식민지였고 여러 기술도 부족한 한국산은 경쟁력이 밀릴것이 다분하였겠지요..
그래서 그당시 1920년대부터 있었던 실력양성운동과 함께 경제자립운동으로서 조선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조선의 물건을 사용하자는, 일종의 경제 자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운동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 8월 평양에서
조만식(曺晩植) 등 70여 명이
조선물산장려회를 발기하고,
조선 물산장려운동을 펼칠 것을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조선이 빈약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자기 나라에서 만든 물건으로
살아가는 자작자급(自作自給)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부득이한 물품 이외에는 철저히 자작자급을 실행하고, 한걸음 나아가 상공업에 착수하여 직접으로
실업계의 진흥을 꾀하고 간접으로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기한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출처:우리역사넷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0년대 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한민족이 거족적으로 전개한 경제자립운동을 뜻합니다.
대구의 물산장려운동은 1923년 대구 지역에서 전개되었으며 이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일제 식민지 경제구조 아래에서 민족경제가 크게 위축되어 조선인의 경제생활에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조선 민족의 경제자립을 위해 일어난 운동으로 192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1923년 1월 9일 서울에서 조선물산장려회 발기준비위원회가 결성, 1월 20일 조선물산장려회가 창립되었고
대구에서도 전국적으로 전개된 물산장려운동에 영향을 받아 물산장려운동이 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마디로 국산품 애용 운동 이였습니다. 물산장려운동 (物産奬勵運動)은 일제강점기 1920년대 일제의 경제적 수탈정책에 맞서 전개하였던 범국민적 민족경제 자립실천운동이지요. 이 운동은 평양 과 경성 을 중심으로 고당 조만식, 인촌 김성수 등이 주도하였다고 합니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반항하는 민족적인 운동 이였습니다. 이것은 인도 간디의 소금 행진 운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산장려운동은 1946년 12월부터 1947년 2월까지 대구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일어난 민중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대한민국 재건과 민생안정을 위한 물가 안정 정책을 추진하던 미군정의 가격조정 방침에 반발하여, 대구 서문시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장에서는 미군정의 가격조정 방침에 따라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농민과 시민들이 물가상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산장려운동은 대구 서문시장에서 시작되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전 국민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농민과 시민,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물가 조절과 민생 안정을 요구하는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이 운동은 대한민국 재건과 민생안정을 위한 노력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사회적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중요한 민중운동 중 하나입니다. 또한, 이 운동으로 인해 대구 서문시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