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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돌문어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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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조반정이 일어난 배경은 뭔가요?

안녕하세요. 수리수리마하수리12345입니다.

인조반정때문에 조선이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는데

인조반정이 일어난 배경은 어찌 되나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반정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정세 변화에 따라 왕위를 위협할지도 모를 동복형 임해군과 유일한 적통 영창대군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임해군이 불궤(법을 어김)를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진도로 귀양보냈다가 다시 교동으로 옮겼습니다. 그 뒤 대북파 정인홍이이첨 등이 임해군의 처형을 주장하자, 이원익·이항복 등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감 이직에게 살해하게 하였습니다.

      광해군의 폐모살제 등의 사건은 지금까지 대북파에게 눌려 지내던 서인 일파에게 반동 투쟁의 중요한 구실을 주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반정은 1623년 서인 세력이 광해군과 북인 세력을 쫓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즉위한 반란입니다. 인조반정의 주요 원인은 광해가 자신의 형과 측근을 살해한 것, 토목 공사와 군역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은 것, 명나라와 조선 왕조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치지 못한 것 등이었습니다. 인조반정은 조선 역사상 가장 근거가 부족한 반란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정세 변화에 따라 왕위를 위협할지도 모를 동복형 임해군과 유일한 적통 영창대군을 경계합니다.

      그래서 먼저 임해군이 불궤를 꾀했다는 죄목으로 진도로 귀양보냈다가 다시 교동으로 옮긴 후 대북파 정인홍, 이이첨 등이 임해군의 처형을 주장하자 이원익, 이항복 등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감 이직에게 살해하게 합니다.

      그리고 칠서지옥을 일으키고 이를 계기로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 김제남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강화에 유폐, 선왕의 유교칠신 중 재직자인 신흠, 박동량, 서성 , 한준겸을 내쫓습니다.

      이어 영창대군을 처형하라는 주장이 일어나자 이이첨의 뜻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8세의 어린 영창대군을 살해, 정원군의 아들 능창군 전을 교동에 금고했다가 살해합니다.

      대비 김씨에 대해도 계속 압박을 가하던 중 1617년 폐모론이 대두되고 영중추부사 이항복, 영의정 기자헌 및 정홍익, 김덕함 등이 반대하자 오히려 이들을 멀리 귀양보냅니다.

      그 뒤 우의정 한효순의 발론을 계기로 대비 김씨의 존호를 폐하여 다만 서궁이라 칭하고 공봉을 감하고 조알을 중지합니다.

      그 뒤에도 실권을 행사하던 이이첨은 1622년 12월 강원감사 백대형을 시켜 이위경 등과 함께 굿을 빙자해 경운궁으로 들어가 대비를 시해하려 하나 영의정 박승종 등이 급히 이르러 추방해 실패하기도했습니다.

      이와 같은 광해군의 폐모살제 등의 사건은 지금까지 대북파에 눌려 지내던 서인 일파에게 반동 투쟁의 중요한 구실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