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통치체제는 성종 때 갖추어지는데, 이에는 최승로의 시무28조가 큰 몫을 합니다. 이에 따라 고려는 나라운영은 유교식으로 하고, 백성의 정신생활은 불교식으로 일종의 이원적인 운영이었던 셈이었죠. 고려 후기 이후 불교는 왕실과 지배층에게서 막대한 토지, 노비 등을 받으면서 스스로 대농장의 대지주가 되어 농민을 수탈하게 되었으며, 술을 만들어 팔고 많은 수공업제품을 만들어 팔았는데 세속적 이익을 탐하는 것이 도를 넘게 되었습니다. 이에 지눌이 불교정화운동, 결사운동을 펼쳤던 시대적 배경이 이러했습니다.
조선 건국은 공민왕 대 기용된 신진관리, 특히 성리학을 익힌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성공하게 됩니다. 이들을 신진사대부라 하는데, 이들은 불교의 폐단을 크게 비판하였습니다. 고려가 망하게 된 이유를 타락한 불교와 불교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 것으로 꼽았습니다. 조선건국의 설계자인 정도전은 불씨잡변에서 이런 불교를 겅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은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성리학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에는 자신들의 새왕조 개창을 정당화하는 측면도 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