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에 대한 업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에 대한 역사적 업적과 발명품 및 일대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천문이라는 영화를 보고 장영실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광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이 발명한 발명품으로는 유명한 측우기부터 시작해서,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혼천의(천문관측기구) 옥루(혼천의와 자격루를 결합, 시간과 계절까지 알려줌), 대간의(천문관측대), 갑인자(기존 금속활자 개량품) 등등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관노의 아들로 태어난 노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태종에 의해 관직에 등용되었습니다.
그 후 세종대왕도 장영실을 중용하였으며 앙부일구, 옥루, 일성정시를 제작하여 조선의 과학기술 발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신분이 노비였는데 세종대왕이 보기에 똑똑하여 관로의 신분을 벗게 하였고 정5품 상의원 별좌가 되었고 그 후 정4품인 호군의 관직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비나 평민들에게도 똑똑하고 잘 하면 노비나 평민의 신분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세종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기억되는 장영실(蔣英實). 역대 과학자 가운데 장영실만큼 이름이 회자되는 인물도 없지 않을까 싶다. 장영실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한국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할 정도로 유명인이었지만, 정작 그의 삶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장영실이 어떻게 출생하여 성장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까닭은 그의 출생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종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장영실은 동래현의 관노(官奴), 즉 노비였다. [세종실록]에는 장영실의 부친은 원(元)나라 사람으로 소주(蘇州)·항주(杭州) 출신이고, 모친은 기녀였다고 전한다.“행사직(行司直)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工巧)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세종실록] 세종 15년 9월 16일)
실상 부친이 관노가 아니었음에도 장영실이 관노가 된 것은 모친의 신분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시대 관기(官妓)들은 신분상 천민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엄격한 신분제도에 따라 관기가 딸을 낳으면 어머니를 따라 관기가 되었고, 아들은 관노가 되었다.
신분제도라는 굴레 탓에 천인에 속하는 어머니 신분을 따라야 했지만, 부친이 원나라 출신의 귀화인이었다는 점은 다른 관노와는 다른 점이다. 태조에서 세종대까지 조선 정부는 귀화인들의 정착을 위해 조선 여자와의 혼인을 주선하였고 귀화인들과 혼인한 여성들은 대체로 관노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족(漢族) 혹은 족장과 같은 출신 배경이 좋은 귀화인들은 대체로 양인 여성과 혼인하였다. 따라서 장영실의 모친은 정실부인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장영실이 태종과 세종대에 살았던 인물인 것만큼은 틀림없지만, 양반이 아닌 까닭에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애매한 실록 기록과 달리 [아산장씨세보]에는 장영실은 항주 출신인 장서(蔣壻)의 9세손이고, 부친은 장성휘(蔣成暉)라고 되어 있다.
장영실의 부친은 고려 때 송나라에서 망명한 이후 줄곧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귀화인인 셈이다.아산장씨 족보에는 장영실이 관노의 신분으로까지 추락한 것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부친인 장성휘가 조선왕조에 들어와 역적으로 몰려 어머니가 관노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것이 사실에 가까운지 현재로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점은 장영실은 오늘날로 치면 다문화 가정 출신이었고, 과학적 재능이 비상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출처 :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9469&cid=59015&categoryId=59015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은 조선 세종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한국 최초로 만든 인물로 동래현의 관노, 즉 노비였으며 세종실록에는 장영실의 부친은 원나라 사람으로 소주, 항주 출신이고 모친은 기녀였다고 전합니다.
행사직 장영실은 그 아비가 본래 원나라의 소주, 항주 사람이고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공교한 솜씨가 보통 사람에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 역시 이를 아낀다. - 세종실록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14년(1432)에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간의대의 제작에 착수하였고,각종 천문의의 제작을 감독했습니다.
세종20년(1438)경복궁 뜰에 혼천의를 간직한 흠경각을 세우는데 모든 공역을 담당하였습니다
이후 혼천의 제작을 완료하고 갑인자 주조를 감독,물시계인 천평일귀,앙부일구,해성정시 및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는 규표등을 제작,했습니다.
세종23년(1441)에는 세계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였습니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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