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향리는 어떠한 역할을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에는 담당 군수가 있었고 지방에 향리가 있었는데 군수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고을로 가야하는데 향리는 고정적으로 향리로 역할을 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향리는 어떠한 역할을 하였나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향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궁금하군요.
향리는 왕조 통치기구의 말단 실무집행자로서 직접 생산자인 농민으로 대표되는 일반 백성과 직접 접촉하여 이들로부터 조세를 수렴하였습니다. 나아가 조세의 조운까지 담당하게 됨에 따라 주현창(州縣倉)의 관리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향리는 지방 행정을 맡아보던 하급 관리로 수령을 도와 백성들을 다스리면서 관청의 살림살이를 맡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향리는 지방 행정을 맡아 보던 하급 관리였습니다. 이들은 수령을 도와 백성들을 다스리면서 관청의 살림살이를 맡았으니 참고하세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향리(鄕吏)는 토착적이고 세습적인 성격을 가지며, 고려시대에는 장리(長吏) 또는 외리(外吏)라고도 하였고 지방행정단위에 따라 주리(州吏)·부리(府吏)·군리(郡吏)·현리(縣吏)·역리(驛吏)·부곡리(部曲吏) 등으로 호칭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인리(人吏), 또는 지방 수령의 관아 밖에 위치한 작청(作廳)이라는 건물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외아전(外衙前) 등으로도 불리었는데 외아전은 중앙관아의 서리(胥吏)가 근무하는 경아전(京衙前)에 대하여 지방 향리가 근무하는 공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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