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견훤대왕은 왜 통일을 못하고 실패를 하였을까요?
후삼국시대 한때 최강국이었던 후백제는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하잖아요. 강성했던 후백제 견훤대왕은 왜 통일을 못하고 실패를 하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즐거운 나날입니다.
견훤의 결정적인 패착은,
왕위를 넷째 아들 금강에게 물려주려 한 데 있었다고 하지요.이를 알고 형제의 서열이 금강보다 위인 신검, 양검, 용검이
이찬 능환과 함께 모의하여 궁내 반란을 일으킵니다.935년 3월, 견훤은 아들들에 의해 금산사 불당에 위리안치
되어 석 달 동안 갇혀 있다가 6월에 이르러 절에서 도망쳐서
왕건을 찾아가지요.왕건은 견훤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우리나라나 어느 나라나 많은 영웅들이 자식 문제에 관한 한
대부분 실패를 하지요.안녕하세요. 엄격한사자83입니다.
왕건의 고려가 조세율을 감면하고 흑창을 설치하거나 신라에 우호적 제스처를 취하는 등 유화 정책으로 민심을 얻으려 했으며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자웅을 계속 겨뤘고 견훤이 서라벌을 함락시키자 직접 신라를 지원하려 하다 공산 전투에서 대패하였습니다.
자신 대신 신숭겸의 목을 내주고 구사일생하기도 했으나, 고창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뒤 장남 견신검의 반란으로 쫓겨난 견훤이 고려로 귀순하고 신라에서는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자 통일 대업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936년 견훤과 함께 후삼국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병탄함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합니다.
후백제의 견훤대왕이 후백제의 내분과 배신한 아들 신검의 정변으로 후삼국 통일에 실패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수리무입니다.
후백제 견훤은 아들들이 싸우다가 결국 아들 신검이 역모를 일으켜 견훤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습니다.
결국 견훤은 왕건에게 항복하고 왕건과 함께 후백제를 공격하여 멸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