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무과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험을 치뤘나요?
문득 궁금해 지는데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 하기 위한 시험은 어떤 시험을 치뤘으며 어떤 실기등을 치뤘는지 무예에 대한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진행 했는지 무과급제에 대해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무과 시험은 실기와 필기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실기는 목전, 철전, 편전, 기추, 기창, 격구, 유엽전, 관혁, 조총, 편추 등 총 10개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왕이 지정하는 1∼2개 과목만을 선택하여 시험을 보았습니다. 필기 시험은 사서오경 중 1 권, 무경칠서 중 1 권, 통감, 병요, 장감박의, 무경, 소학 중 1 권, 경국대전 등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그 이해도를 답하거나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무경칠서는 무과 시험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과목이었습니다. 실기 시험에서는 화살의 정중앙부인 정곡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으며, 돼지 머리를 많이 맞출수록 가산점이 주어졌습니다. 또한, 초시에서 통과한 후 복시에서는 무예 실기뿐만 아니라 전술적 교리와 지식, 판단력 등도 평가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과 시험은 조선시대에 무예와 체력, 군사 지식 등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무예 실기시험과 이론시험으로 구성됩니다. 무예 실기시험은 주로 활쏘기, 말타기, 검술, 창술 등을 포함하며, 이론시험은 군사학, 병법, 군사 역사 등을 다룹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과는 정기 시험인 식년시(式年試)를 비롯하여 증광별시(增廣別試), 정시(庭試), 알성시(謁聖試), 춘당대시(春塘臺試), 외방별과(外邦別科) 등의 부정기 시험과 도시(都試)가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는 서울과 지방의 군사와 문무반의 자원에 따라 봄가을에 거행한 연무 대회로 식년시와 약간 차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무과는 세종대를 거치면서 정비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법제화되었다고 합니다. 무과의 시험 과목은 크게 무예와 강서(講書) 시험 두 가지로 구분되느데 무예는 활쏘기와 창을 중심으로 한 보(步)·기(騎) 무예와 격구(擊毬)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강서는 병서와 유교 경전의 시험인데 식년 무과의 초시는 무예만을 시험 보았다고 합니다. 시험 과목은 목전(木箭)·철전(鐵箭)·편전(片箭)·기사(騎射)·기창(騎槍)·격구의 여섯 가지였다고 하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궁술(弓術)과 기마술(騎馬術)이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무기 체계 면에서 보면 네 종의 궁시(弓矢)와 한 종의 창으로 구성되었는데 전반적으로 궁시의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편전의 평점이 90분으로 전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편중되어 있었고 격구는 고려 말에 그 폐단이 극에 달하였던 과목으로 문신들의 폐지 주장이 있었지만, 무예 훈련의 기초가 된다고 하여 1425년(세종 7) 4월에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조선시대의 무과는 무예와 함께 병서를 통한 병략(兵略)에 대한 지식이 요구되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의 군사 지휘관 선발을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예의 시험 과목 역시 활쏘기와 말타기가 중심이 된 장병(長兵) 전술 위주의 무예였던 것인데 이에 반해 근접전 무예인 격검(擊劍, 칼쓰기)은 시험 과목에서 아예 제외되었으며, 창술도 비중이 매우 낮았던 것이다.또한 궁술(弓術)은 군사 훈련에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활쏘기는 군관들의 군사 훈련인 동시에 체력 단련이었고, 오락이며 유희이기도 한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고 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들은 거의 매일 활쏘기 연습을 하였고 군관들끼리 편을 갈라 요즈음과 같은 단체전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접한 군관들을 방문하여 원정 경기를 펼치기도 합니다. 활은 10순(巡, 1순은 다섯 발) 단위로 쏘았는데, 20순이나 30순을 쏜 경우도 많았지만 하루에 10순을 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과시험 또한 문과 시험과 같이 정기시험인 식년시가 있고 부정기 시험인 별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를 거쳤습니다. 시험과목은 <경국대전>을 기초로 목전(끝이 뭉뚝한 나무촉살쏘기) 철전(뚜겁고 무거운 몸체에 뭉뚝한 쇠촉살 쏘기) 기사(마상궁술) 기창(마상창술) 격구 등이었습니다. 초시에 합격한 19명은 다음해 한양에 올라와 복시를 치루게 됩니다. 복시의 경우 시험과목은 초시와 동일하나 격구 대신에 병서를 외우고 알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강서가 들어섭니다. 이 시험은 병조와 훈련도감이 주관하여 28명을 선발합니다. 3차 전시는 보격구와 기격구만으로 시험을 치루는데 일종의 체력테스트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선발된 28명의 순위를 정하게 됩니다. 문과보다는 늦지만 나라를 지키는 장수로서 신분상승을 노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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