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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 거란의 1차 침입시 고려 조정에서는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서희는 거란의 침략 목적을 파악한 스스로 강화 회담에 나섰습니다.
거란의 소손녕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 주장과 고려가 송(宋)과 교류하고 있음을 문제 삼아, 고려가 차지한 옛 고구려 땅을 거란에게 바치고 거란과 국교를 맺으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서희는 고려야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거란과 교류하려고 싶어도 여진족 때문에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일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고려 국왕이 거란에 가 조회하고 거란의 연호 사용에 합의하자, 거란은 압록강 하류 동쪽 편의 여진족 거주지 280리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회군하였습니다. 이렇게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는 여진을 몰아내고 강동 6주를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