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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4.18

조선시대 소고기 도축은 금지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소고기 도축은 금지되어있어 죽은 소만 먹을수 있었다고 하는데

어떠한 이유로 소고기 도축이 금지되었던건가요?

당시 백성들의 불만은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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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형적인 농업 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소는 농업의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소가 없을 경우 농지에서 그루갈이를 깊게 할 수 없어 소출량이 크게 줄어, 농민의 이탈 이나 농촌 사회의 불안정이 야기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고기는 국왕의 품격을 상징했기 때문에 자칫 잘못 먹다간 큰일을 당했다. 명종 당시 박세번은 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인들과 소를 잡았단 이유로 “반역의 흔적이 있다”며 처단됐다. 조선 전기 무신인 남이는 국상 중에 소고기를 먹었다가 체포됐다. 중종반정의 명분 중 하나가 연산군이 소를 너무 도살하고 소고기를 남용했다는 점이기도 했다.

    소의 도살은 관의 허락하에 이뤄져야 했다. 소의 수가 곧 국력이었으므로 나라에서 소의 개체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세조 때는 소를 사육할 경우 국역을 면제해주는 정책을 펴기도 했고 17세기 이후에는 우역이 만연하자 소 도살을 금지하는 강력한 우금령을 내리기도 했다. 유일하게 소고기를 마음껏 먹는 집단은 공부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소고기로 달래는 게 허락된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재밌게도 서울 도성 내 유일하게 소 도축이 하가된 장소가 성균관이었다.

    왕실 및 양반과 달리 일반 백성들은 소고기를 즐기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통념과 달리 백성들도 소고기 잔치를 자주 벌였다고 말한다. 18∼19세기 초까지 새해에는 열흘간 허가 없이 도살할 수 있었고 제사 등의 핑계를 들어 도축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조 당시엔 설날, 단오 등 네 번의 명절에 2만∼3만 마리를 잡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인구로 나눠 보면 1인당 100g 안팎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조선시대 1인당 소고기 섭취량이 20세기 말 한국인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당시 소 한 마리 값은 쌀 한두 가마니(현재 한 가마니 기준 20만 원 미만)로 현재와 비교하면 무척 저렴했다.

    출처: 동아일보 [책의 향기]“조선시대에 지금보다 소고기 많이 먹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고려와 같이 모든 동물의 일괄적인 살생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농작업에 필수적 인 축력을 제공하는 소는 도축을 엄격히 금지하였던 것이며 사실 소는 농사를 짓는데 너무 나도 중요한 존재 였기에 도축을 굳이 금지해도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지요.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소가 농경 생산 수단으로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에 소고기 도축은 유교 사상에 따라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부유층이나 관료들은 비밀리에 소를 도축하여 소고기를 먹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소고기 도축이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소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비밀스럽게 이루어졌고 일반 백성들의 불만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서양화되면서 소고기 도축

    이 일부 허용되고, 20세기에는 소고기 산업이 발전하여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