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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안경곰70
아리따운안경곰7023.05.08

신라시대 왕즉불 사상이란 건 어떤것인가요?

신라시대에 왕즉불 사상으로 불교식 왕명들이 많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왕즉불 사상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사상을 말하는 것인가요?

왕즉불 사상이 어떤 것이고

그로인해 영향을 받은 왕명에는 어떤 호칭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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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즉불은 왕이 곧 부처라는 말입니다.

    전륜성왕사상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수용되었다. 불교사에서 전륜성왕의 정법정치를 구현한 인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아소카(Asoka)왕을 들고 있다. 아육왕(阿育王)은 아소카왕의 한역으로, 후대의 문헌에서는 육왕(育王), 성왕(聖王)이라고도 하였다. 아소카왕은 기원전 3세기에 출현한 마우리야(Maurya)왕조의 제3대왕이다. 아소카왕은 인도 역사상 최초로 전 인도 대륙을 통일하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왕으로, 『잡아함경(雜阿含經)』23의 아육왕경(阿育王經)을 비롯한 불전에서도 보인다. 범본 ‘아육왕전(阿育王傳)’이 처음으로 한역된 것은 306년이고, 6세기 초에는 이를 다시 10권본 ‘아육왕경’으로 재번역하였다. 동아시아불교에서는 아육왕을 이상적인 불교의 상징으로 존숭했는데, 아육왕이 만든 불상이나 탑과 관련된 설화가 유포되기도 했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전후의 삼국시대이다. 전래된 내용은 중국에서 변용된 인도불교로, 특히 남북조시대 북조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 북조 불교는 국왕이 곧 불교라는 ‘왕즉불(王卽佛)사상’이 기조를 이루었는데, 삼국은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왕실의 주도 하에 새로운 지배이념으로써 불교를 수용하였다. 불교는 고대국가의 이념적 기반인 동시에 국왕의 권위를 높이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전륜성왕사상은 불교의 신성한 권위에 기대어 왕권을 높이기 위해 수용된 불교의 정치이념이었다.

    전륜성왕은 산스크리트의 ‘바퀴’(cakra)와 ‘굴리다’(vartin)에서 유래된 세계적 통치자에 대한 고대 인도의 개념이다. 전륜성왕의 의미는 “다르마를 실천하는 왕, 다르마의 바퀴를 굴리는 왕, 혹은 통치영역이 전 세계에 이르는 정의로운 왕”등으로 해석되며, 불교에서는 “법륜을 굴리는 붓다의 세속적인 짝”으로 정의된다.

    전륜성왕의 특징은 일반인과 다른 32가지의 신체적인 특징, 즉 32상(相)을 지녔고, 7가지 보물, 즉 칠보(七寶)를 가졌으며, 4가지 신령한 덕, 즉 사령덕(四靈德)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4종류의 군대, 즉 사병(四兵)을 거느리고, 사천하(四天下)를 다스리며, 1000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전륜성왕은 정법(正法)으로 국토와 인민을 통치하는 이상적인 통치자이다. 전륜성왕은 수미사주(須彌四洲)의 세계를 통솔하는 왕이며, 윤보(輪寶)를 굴리면서 사방(四方)을 위엄으로 굴복시킨다고 하였다. 이 전륜성왕이 세상에 출현하면 찬란한 금륜(金輪)을 비롯한 칠보(七寶)가 저절로 갖추어져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천하가 정법(正法)으로 통일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륜성왕은 무력이 아닌 정법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가장 이상적인 군주상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륜성왕사상 [轉輪聖王思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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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이 즉 불(미륵)이라는 사상입니다.

    왕권 강화를 위하여 이러한 사상을 내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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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흥왕은 전왕인 법흥왕이 다져 놓은 기반 위에서 신라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백제 성왕과 함께 551년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상류 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 곧이어 553년 백제를 공격해 한강 하류 지역까지 확보하여 한강 유역 전체를 신라의 영토로 삼으면서 한반도에서 신라의 위상을 한껏 높였습니다. 이어 562년에는 대가야를 정벌하여 가야 지역을 완전히 신라 영토로 삼았습니다. 또 진흥왕 순수비로 볼 때, 북방으로는 함경남도 함흥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대대적인 영토 확장과 함께 역사서 국사의 편찬이나 청소년 수련 조직이면서 일종의 인재 등용 제도인 화랑도 창설 등 내정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 진흥왕은 불교를 진흥시키는 데에도 크게 힘썼습니다. 황룡사를 창건하고 ‘왕은 곧 부처’라는 왕즉불 관념을 도입하여 신라 왕실을 부처의 집안으로, 신라를 이상적인 불국토로 여기는 사상을 널리 유포하였고 불교를 크게 융성시켰습니다. 불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를 안정시켜 국가 발전의 발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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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즉불 사상은 한족 지배에 대한 북위 지배자의 정통성 확립을 위한 통치이념으로 ‘황제는 곧 부처의 화신 이다’라는 사상입니다. 신라도 이에 양향을 받아서 진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만년에는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던 법흥왕을 계승하였는데, 그도 불교를 장려하고 만년에 출가하여 법명을 법운(法雲)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진흥왕의 이름은 사미(沙彌) 또는 승가(僧伽)를 뜻하는 삼맥(彡麥)이라 하였는데, 두 아들의 이름은 동륜(銅輪)과 금륜(金輪 또는 舍輪, 진지왕)이라 하여 전륜성왕설에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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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왕즉불


    - 왕이 곧 부처다. 그러므로 불교를 믿는 것이 곧 왕을 믿는 것이며 왕이 내리는 명령은 곧 부처의 명령이 되고


    왕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는 것이 곧 부처를 위해 싸우는 것이므로 전쟁에서 무서워하지말고 싸우고 왕을 섬겨라.


    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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