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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08.20

조선시대 음악가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조선시대 음악가들은 분류가 나뉘었을 것 같은데요. 왕실행사에서 연주를 하는 음악가와 또, 백성들을 상대로 공연을 펼치는 음악가는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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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송흥록(宋興祿, 1801∼1863)의 경우 그 명성만큼이나 출연료도 상당하여 양반들의 부름에

    응하여 소리를 하게 되면 출연료가

    ‘천냥금’에 달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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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별도로 음악가라는 직업이 없었습니다. 그냥 기생들이나 술자리에서 노래를 하거나 아니면 판소리 꾼 들이 노래를 하고는 했지요. 이들의 신분은 보통 천민 이나 양민 들이 였고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에는 풍각 쟁이 라고 해서 노래등을 하면서 돈을 받는 직업도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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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연을 예로즐어볼때

    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던 '세종' 과 함께 시대의 음악과 기준을 세우며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기 위해 도왔으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추앙되는 인물입니다.


    ​태종 5(14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과 문학을 역임하다 세종 즉위 후 악학별좌에 임명되어 악사를 도맡았습니다.


    ​당시 불완전한 악기 조율의 정리와 악보 편찬의 필요성을 적극 상소하여 1427년(세종 9)에 편경 12장을 만들고 직접 자작한 12율관에 의거하여 음률의 정확을 기하였습니다.


    ​또한, 조정의 조회에 사용되던 향악을 폐하고 아악으로 대체하여 전반적인 궁중음악의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1433년 유언비어 유포라는 혐의를 받고 파직되었으나, 용서를 받고 다시 복직하여 아악에 종사하며 중추원 동지사를 지냅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 시기 아들 계우가 연루되어 처형되었으나, 그는 삼조에 걸친 원로로 대우받아 파직으로 그치고 낙향하게 됩니다.


    이처럼 궁중음악을 도맡아 하던 계층은 좋은 대우를 받았으나 정치와 연관되어 안타까운 결말이 있습니다.

    대중이나 민중과 함께한 남사당패나 소리꾼들은 그 인기와 능력에 따라 연주를 하고 다니며 수익을 올렸던것으로 알고ㅠ있습니다ㅡ 그러나 그 삶은 팍팍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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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 음악가들은 예악사상에 따라 천민으로 분류되어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예악사상은 유교의 기본 이념인 예(禮)와 악(樂)을 바탕으로 한 음악 이론으로, 음악을 도덕 교육의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음악가들은 신분적으로 천민으로 분류되었고, 그에 따라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음악가들 중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실이나 양반가의 후원을 받아 음악을 연주하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민간에서도 음악가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민속 음악을 연주하고, 민중의 삶을 위로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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