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연을 예로즐어볼때
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던 '세종' 과 함께 시대의 음악과 기준을 세우며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기 위해 도왔으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추앙되는 인물입니다.
태종 5(14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과 문학을 역임하다 세종 즉위 후 악학별좌에 임명되어 악사를 도맡았습니다.
당시 불완전한 악기 조율의 정리와 악보 편찬의 필요성을 적극 상소하여 1427년(세종 9)에 편경 12장을 만들고 직접 자작한 12율관에 의거하여 음률의 정확을 기하였습니다.
또한, 조정의 조회에 사용되던 향악을 폐하고 아악으로 대체하여 전반적인 궁중음악의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1433년 유언비어 유포라는 혐의를 받고 파직되었으나, 용서를 받고 다시 복직하여 아악에 종사하며 중추원 동지사를 지냅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 시기 아들 계우가 연루되어 처형되었으나, 그는 삼조에 걸친 원로로 대우받아 파직으로 그치고 낙향하게 됩니다.
이처럼 궁중음악을 도맡아 하던 계층은 좋은 대우를 받았으나 정치와 연관되어 안타까운 결말이 있습니다.
대중이나 민중과 함께한 남사당패나 소리꾼들은 그 인기와 능력에 따라 연주를 하고 다니며 수익을 올렸던것으로 알고ㅠ있습니다ㅡ 그러나 그 삶은 팍팍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