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역사가 흥미로워서 보고있는데 균역법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조선시대 역사가 흥미로워서 보고있는데 균역법이 무엇인지 쉽게알고 싶고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실시한 군역 제도로 조선 전기 군역제도의 원칙은 농민장정은 모두가 군역의 대상자가 되는 양인 개병제도였는데, 16세기 군포 2필을 납부하면 군역을 면제해 주는 방군수포제를 실시, 17세기 지방 아전들의 인징, 족징, 황구첨정, 백골징수 등 폐단이 나타나자 이에 정부는 개선책을 논의합니다.
영조는 균역청을 설치해 군포 2필을 군포 1필로 납부하는 균역법을 실시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균역법均役法은
조선시대 군역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하여 만든 세법입니다.
조선 전기(15세기) 군역 제도의 원칙은 농민 장정은 모두가 군역의 대상자가 되는 양인 개병(병농 일치) 제도였다. 16세기에는 군포 2필을 납부하면 군역을 면제해 주는 방군수포제를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17세기에 지방 아전들의 인징, 족징, 황구첨정, 백골징수 등 폐단이 나타났다. 이에 정부에서 개선책을 논의한 결과 모든 가호(家戶)에 군포를 징수하자는 호포론과 토지를 기준으로 군포를 납부하자는 결포론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양반과 지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영조는 절충안으로 균역청을 설치하여 군포 2필을 군포 1필로 납부하는 균역법을 실시하였습니다. 균역법 실시 후 부족한 군포를 메우기 위해 어세, 염세, 선박세와 결작, 선무 군관포 등 부가세를 징수하였습니다. 그러나 균역법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19세기 흥선 대원군 때 군역의 대상자를 양반에게까지 확대한 호포제를 실시하여 양반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군역법: 조선시대 군역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하여 만든 세법 입니다.
1750년 영조 종래 인정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가 여러 폐단을 일으키고, 농민 경제를 크게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다 2필 군포를 1필로 감하기로 한편 균역청을 설치, 김포에 따른 부족재원을 보충하는 대책을 마련하게 하고,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어전세.염세. 선세 등을 균역청에 관장하여 보충한다는 등의 균역법이 제정되어 1751년 9월에 공포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균역법은 백성들에게 부과된 군역(軍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선 후기 영조(英祖) 시기에 시행된 재정된 제도입니다.
조선은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양인(良人)
남성에게 군역을 부과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균역법(均輿法)"은 조선시대(1392년 - 1910년) 한국의 행정 및 경제 체제에서 사용되었던 중요한 법률과 정책 중 하나입니다. 이 법은 조선시대에 국가의 토지 조세를 부과하고 관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조선 왕조의 경제 정책 중 하나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균역법은 토지에 대한 조세를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법은 토지의 종류, 수량, 생산력 등을 기준으로하여 지방 관리자들이 토지에 대한 세금을 정확하게 부과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균역법은 균형을 맞추어 토지 소유자 간의 공정한 부담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균역법은 조선시대의 경제 체제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토지 조세 수입을 안정화하고 조세 부담을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법은 국가의 재정을 지원하고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조선 왕조의 행정 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균역법은 조선시대 한국의 역사와 경제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조선시대의 사회와 경제 구조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역사 애호가들에게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 균역법은 1750년(영조 26년)에 시행된 군역제도 개혁입니다. 군역은 16세에서 60세 사이의 양인 남성에게 부과된 병역 의무를 말합니다. 균역법은 군역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고, 호당에서 토지 1결당으로 부과하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균역법은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줄여주고,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또한, 군역의 공평한 부담을 실현하고, 국가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균역법은 시행 초기에는 몇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점차 안정화되어 조선 후기의 주요 재정제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균역법은 조선 후기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인 개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균역법은 조선 후기 세금의 일종이었던 군역을 대신하여 군포라 불리는 세금을 2필에서 1필로 줄인 세법입니다. 개인에게 부과한것이 아니라 토지에 부과를 하여 지주들의 납세를 촉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군포는 면포 1필에 대하여 쌀로 내면 6말에 해당되고, 조는 8말에 해당되며, 콩은 12말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2냥으로 당시 전세의 3배에 해당하여 가난한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지주의 세금부과율을 높히는 세제개혁 이었습니다. 사실 획기적인 정책이긴 하나 최초엔 지주들이 세금을 부담하며 군역의 폐단이 줄어들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농민들에게 그 부담을 지주들이 떠넘기게되어 후기에는 다시 군정 물란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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