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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
사일러스23.05.17

조선시대에 좌식문화로 바뀐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려말~조선 초를 다룬 사극을 보면,

고려 말기에는 집에서 공부하거나 술자리, 연회를 열 때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하는데,

조선으로 바뀌자마자 좌식으로 묘사되는데,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바뀐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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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황실이나 귀족들, 일반백성일부가 입식문화로 생활했고 백성들 대부분은 좌식문화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조선시대 초기 까지 고려와 비슷한 생활양식이었지만 이 이후부터 왕실, 사대부, 평민 모두 좌식문화로 정착하게 됩니다.

    이유는 조선조는 점차 유교문화로 정착해가면서 과거 고려조의 문화를 사치하고 비유교적이라 하여 부정하게 되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삼국시대에 비해 활동적인 생활 패턴보다 정숙한 생활 패턴을 즉 유교적인 생활을 권장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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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좌식문화의 발달은 온돌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온돌 형태는 평평한 바닥에 하단을 더 올려 군대 내무반 형태로 단이 있는 북방형 온돌과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평평한 방바닥으로만 온돌을 만드는 남방형 온돌의 형태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황실과 귀족들, 일반 백성 일부가 입식문화였고, 백성들 대부분은 좌식문화(남방형 온돌생활)를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초기까지는 고려와 비슷하였으나 그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좌식문화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고려시대까지는 중국 주거문화와 비슷하여 주택이 단층이 아니라 2~3층의 복층 한옥도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과거부터 남아있었던 것은 있었으나 새롭게 건축된 것으로는 정자와 같이 필로티 형태가 아니면 복층이 거의 없었다고 보입니다. 이유는 아궁이를 이용하여 바닥에 만드는 온돌의 경우 2층에 설치하기란 목조건물 위주였던 당시로는 어려웠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래서 보통 고려시대까지도 활발했던 2층 이상 구조의 건물의 경우 12층은 생활을 하고 2층 이상은 서고나 창고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생활문화 외 추가적으로 정치적인 이유를 추론해보자면,

    조선은 과거 고려의 문화가 온갖 사치하고 비유교적이며, 부패하여 이를 배척하고 새로운 성리학이 기반이 된 국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고려시대의 입식보다는 정숙한 유교적인 생활을 권장했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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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세기, 조선조 최대의 생활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은 입식에서 좌식문화로의 전환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일상에서 앉아서 생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좌식 문화). 하지만 그런 생활이보편화 된것은 고작 300여년일 뿐이다. 그전에는 서구나 중국처럼 서서 생활하는 문화였다(입식문화) 17세기에 일어난, 전국적으로 확대보급된 온돌의 대중화가 대격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출처:history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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