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족보와 노비문서가 소실되고 양인만을 받아들이는 군대에서 사람 가리지 않고 닥치는데로 징병했기 때문에 천민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고통받던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일반 양인들 역시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상승하거나 주인없는 족보를 주워 그 족보를 물려받은 양반 행세를 하는 등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을 불태웁니다.
여기에 전쟁 이후 복구 비용 마련을 위해, 벼슬을 내린다는 말만 쓰여있고 이름은 안 써있는 공신첩이 나돕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전쟁중에 약탈을 하던 군납을 하던 해서 한 몫 단단히 잡은 양, 천민들에게 아주 인기를 끌죠. 물론 전쟁으로 후계가 죽거나 재산을 모두 잃어 멸문지경이 된 양반가의 족보를 돈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도정치 때가 진짜 막장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때는 임진왜란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병자호란까지 거치며 신분제 붕괴는 더욱 빨라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