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왜 미륵불이라고 자처했나요?
궁예는 왜 미륵불이라고 자처했나요? 후고구려가 세력이 커서 더 유리한 거 같은데, 결국 왕건에게 세력을 다 빼앗기잖아요. 불교 사회로서 백성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미륵불로 자처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무고한 사람도 많이 죽였잖아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궁예가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한 것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궁예가 자신이 미륵불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신하들은 공포에 떨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륵불은 미래의 부처를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구원해 주는 미륵불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궁예는 자신이 바로 그 미륵불이라며 자기에게 신기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관심법’이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재를 일삼은 궁예, 왕위를 빼앗기다 (생방송 한국사 3, 2017.01.20., 장선미, 최인수, 박종호, 고종훈, 공미라)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는 고려의 왕인 고종의 왕비로,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1238년부터 1259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녀는 불교 수행자로서 높은 지위를 가졌으며, 불교에서 중요한 대수라 불인 미륵왕의 화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궁예가 왜 미륵불이라고 자처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불교의 수행자로서 자비와 광명을 지닌 미륵왕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불교의 이상을 실천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자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교의 가르침과 윤리를 실천하며, 그녀의 행동과 태도는 선비적인 미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군주 차원에서 공공연히 미륵을 자처한 것은 6세기 백제 성왕 시대부터였던것으로 추정되며 역사적으로 힘든 시기에 미래불의 도래를 바라는 미륵신앙이 유행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화랑더, 후삼국시대 미륵신앙, 고려시대 향도의 매향활동, 조선시대의 후천 개벽사상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궁예가 미륵불 자처 행동은 당시 백성들의 삶을 외면한 기득권층과 종교계에 대한 궁예의 개혁정치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궁예까 미륵관심법을 통해 전제권력을 강화하면서 호족들의 농민 직접지배권을 점차로 중앙정부로 귀속시킴에 따라 면세혜택을 받은 농민들도 점차 증가하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에 들어온 불교중에 당시에 소외받은 사람들이 가장 의지했던 것이 바로 미륵불 입니다. 미륵불이 도래해서 새로운 세계를 열 것이라는 메시아적인 신앙을 가졌던 것 입니다. 궁예의 개인적인 이상주의적 성격과 또 당시에 소외되었던 강원도 철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지역 사람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 되면서부터 궁예는 민중의 염원을 안고 스스로 미륵불 즉, 자기가 마치 세상을 구원하러온 사람 처럼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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