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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7.01

편작은 실제 존재했었던 인물인가요?

편작의 의술은 능히 죽은사람도 살려낸다는 말은 들어봤는데요.

중국의 화타와 더불어 명의로 손꼽힌다는데 어느 시대에 있었던 인물이고, 일화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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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전설상의 시대인 삼황오제때의 명의로 편작심서에 따르면 황제태을신명론을 전수하고 오색맥진, 삼세병원 등을 저술, 이에 대해서는 후세의 순우의, 화타 등이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편작의 일화

    편착의 연로한 부친은 천식으로 무척 고생했는데 천하의 명의로 이름난 편작이 그깟 천식하나 못고친다는게 말이 되냐며 그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의술을 자랑할 요량으로 처방을 주어 단번에 완치시켰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편작이 펄철 뛰며 제자들에게 '이제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라고 나무랐다. 그 이슈는 천식 따위야 얼마든지 고칠수 있으나 명의를 아들로 둔 아버지가 건강해진다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며 거리낌없이 행동하여 결국은 큰병을 앓을 것이니 일부러 천식을 치료하지 않아 아버지가 매사 조심하기를 바란 것인데 제자들이 그것을 망쳐놓았기 때문으로 그의 예견대로 부친은 천식이 낫자마자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다가 얼마 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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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편작은 BC 4세기 무렵 전국시대의 중국 명의로서 <난경 (難經)>의 저자라고 합니다. 당시 그가 유명해 진 이유는 죽어서 장례까지 치루려 했던 괵태자를 침을 놓아서 살려 냈다고 하는 이야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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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국시대의 명의(名醫). 발해정인(渤海鄭人)으로 성은 진(秦), 이름은 월인(越人)임. 죽은 사람도 능히 살린다고 했으며, 진(秦) 나라 태의령(太醫令)인 이혜(李醯)가 자기의 의술이 편작보다 못함을 알고 사람을 시켜 편작을 찔러죽였다 함.<사기史記 편작전扁鵲傳>

    扁鵲不能肉白骨 微箕不能存亡國(편작불능육백골 미기불능존망국 ; 편작이 백골에 살이 붙게 할 수 없고, 은殷의 미자微子와 기자箕子도 망하는 나라를 살려내지 못한다.)<염철론鹽鐵論>

    君不見當時扁鵲稱神醫 換易心肝人不識(군불견당시편작칭신의 환역심간인불식 ; 그대 듣지 못했는가, 당시에 편작을 신의라 일컫던 것을. 염통과 간을 바꾸어 놓아도 사람들은 알지 못했네.)<이인로李仁老 증접화자贈接花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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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편작은 실존인물로 보입니다.

    편작(BC401~BC310)은 약2500년전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발해군(현 하북성과 산동성) 출신의 명의라고 합니다.
    편작심서에 따르면 황제태을신명론을 전수하고 오색맥진, 삼세병원 등을 저술했으며, 이에 대해서는 후세에 순우의, 화타 등이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삼세편작이라고 해서 오리지널 편작 이외에 두 사람인 진월인, 두재를 편작이라 했는데, 편작심서는 두재의 저작이기에 두재가 편작을 자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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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완(緩)다.


    자는 월인(越人)이고 호는 노의(盧醫)이다.


    전국시대 초기 제(齊)나라 발해(渤海) 막군(鄚郡, 지금의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시 런추(任邱)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노국(盧國, 지금의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창칭(長淸)구 남쪽)에서 살아 노의(盧醫)로 불렸다고도 한다.


    젊어서 귀족 관리의 객관으로 있을 때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은자를 만나 교유하고 스승으로 모셨는데, 이때 사람의 몸을 투시하는 신비한 능력을 얻게 된다.


    편작은 무술1)로 병을 고치는 것을 반대하고, 고대부터 전하는 의술과 민간의학을 취합하여 독특한 진단법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얼굴빛과 소리만 듣고도 병을 진단할 정도로 신통하여 민간에서 신의(神醫)로 받들어졌다.


    이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의술을 행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괵국(虢國)의 태자가 시궐(尸厥)이라는 병에 걸려 거의 죽은 것으로 여겨졌는데 편작이 치료하여 소생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편작이 볼 때 태자는 그저 열기병(熱氣病)에 걸렸을 뿐이어서 태자의 몸이 따뜻한지 귀가 잘 들리는지 코가 잘 열리는지 살펴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았을 뿐이었다.


    이 일로 그가 죽은 이도 살려내는 의술을 행한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한비자』 「유로(喻老)」에는 그가 채국(蔡國)에서 제 환공을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편작은 제 환공을 보자마자 그가 작은 병을 앓고 있음을 알았고, 즉각 약을 처방하여 먹으면 곧 괜찮아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 환공은 이를 듣지 않았고, 편작이 두 번째로 권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세 번째로 편작이 제 환공을 만났을 때 환공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편작이 말한 것 같은 증상이 일어남을 자각했으나 병세가 퍽 중했다.


    이때서야 편작에게 치료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편작은 이제는 고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제 환공은 과연 얼마 후 죽고 만다.


    한편, 『열자』에는 편작이 심장을 수술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훗날 편작은 진(秦)나라에서 태의령(太醫令) 이혜(李醯)의 흉계로 암살당했다고 한다.


    『한서』 「예문지(藝文志)」에 「편작내경(扁鵲內經)」과 「편작외경(扁鵲外經)」이 실려 있으나 모두 없어졌다.


    그의 저작으로 알려진 『난경(難經)』은 후세 사람의 위작으로 판명되었다.


    송나라 때 편작은 의자지사(醫者之師)로 봉해진다.


    『송사(宋史)』에 따르면 인종이 어느 날 몸이 편치 않음을 느끼자 명의 허희(許希)가 침구(針灸)로 인종을 치료했다.


    인종은 고마워서 그를 의관으로 명하고 큰 상을 내렸다.


    허희는 인종에게 절을 하고 다시 서쪽을 향해 한 번 더 절했다.


    인종이 그 이유를 물으니 허희는 스승 편작에게 절했다고 대답했다.


    허희는 인종에게 상으로 편작을 위한 사당을 지어줄 것을 청했고, 인종은 사당을 지어 편작의 신의(神醫)에 존경을 표하며 영응후(靈應侯)로 봉했다.

    출처 : 중국인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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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편작은 중국 전설상의 시대인

    삼황오제 때의 명의이며, 후대에도

    동양권에서는 화타와 더불어 최고의

    명의로 칭송받는 인물로

    의술이 뛰어났기에 명의의 상징으로

    남아 후세 사람들이 뛰어난 명의에

    대해서 편작으로 비유했습니다.

    병이 위중한 상태를 가리켜 "편작이

    여럿 와도 못 고친다."라는 비유를 할 정도. 때로는 명의를 넘어 신의(神醫)로

    칭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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