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57년 11월 16일에 금성대군의 사사와 장인 송현수의 교형이 결정되자 단종은 나중에 영월에서 이 소식을 듣고 자살했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단종의 사사 역시 이때 결정된 것으로 보이며 영월 청령포에서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여름이라 홍수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영월 관아 내의 객사로 옮겨졌으며 단종은 그 곳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세조실록에 노산군이 장인 송현수와 숙부 금성대군의 죽음을 듣자 슬픔을 못이겨 목을 매 자살하였고 후에 예를 갖춰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있으나 승정원일기나 이후 무덤을 방치해둔것, 후대 왕들의 기록을 보면 타살이 확실해보이고 아마 사약을 거부한 후 타살로 추측됩니다.
선조실록에 기대승이 경연 때 단종 사망 당시 영의정이던 정인지를 비판하면서 금부도사가 사약을 주었다고 하며, 그 근거로 사약기록이 의금부에 남아있고 당시 사형장면을 현지인이 기록, 이것을 관찰사가 보았다는 것 등을 내세운 것으로 보아 사약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단종은 스스로의 의지로 사약을 거부하다 끝내 타살상한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