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유신독재 반대시위입니다. 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내건 김영삼이 총재로 당선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이어집니다. 이어 8월 11일 YH여공사태 9월 8일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신청 10월 4일 김영삼 의윈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유신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신민당 국회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했으나 공화당과 유정회는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되면서 부산과 마산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주민들을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10월 15일 부산대학교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었고 18일-19일에는 마산 창원까지 시워가 확산되었습니다.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시위는 진정국면에 들어섰으나 일주일이 채지나지 않아 김재규 중정부장이 박정희와 차지철을 총쏴 죽임으로써 유신체제는 종식되었으나 신군부를 야기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