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은 어떤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일대기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은 뭐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학문 전반에 걸친 백과전서적 학자로서 과학 제 부문의 기초를 쌓고 논리학을 창건하기도 하였다. 트라키아의 스타게이로스에서 출생하여 플라톤의 학교에서 수학하고, 왕자 시절의 알렉산더 대왕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B.C. 335년에 자신의 학교를 아테네 동부의 리케이온에 세웠는데, 이것이 페리파토스 학파(peripatetics : 소요학파, 逍遙學派)의 기원이 된다. 그는 플라톤의 비물체(非物體)적인 이데아의 견해를 비판하고 독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지만, 플라톤의 관념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에서 동요하였다.
그의 연구는 1)존재와 그 구성ㆍ원인ㆍ기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학, 이것에는 제1철학, 수학, 자연학이 포함되고, 2)인간의 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실천학, 여기에는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이 포함되며, 3)창조성을 대상으로 하는 제작술(製作術), 여기에는 시(詩) 등 예술 활동이 포함된다. 제1철학은 후에 형이상학이라 불리워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학문 연구의 대상은 일반적인 것의 획득이고, 이 획득은 감각에 기초한 지각에 의해 개개 사물 가운데 있는 일반적인 것을 인식함으로써 성립하며, 감각적인 것을 통하지 않고는 체험될 수 없다고 보고 귀납을 인식의 조건으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사물 생성의 조건이라는 의미에서의 원인으로 1)질료(質料, 그 hylē, 영 matter) : 생성의 수동적인 가능성, 2)형상(形相, 그 eidos, 영 form) : 질료에 내재하는 본질, 3)운동의 시원(始原), 4)목적 등 네 가지를 들었다.
이렇게 일체의 존재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며, 가능성(질료)이 현실성(형상)으로 전화ㆍ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엔텔레케이아). 질료에는 수동성을, 형상에는 활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운동의 시원과 목적을 형상에 귀착시켰다. 여기에서, 운동의 시원으로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것, 즉 '움직이지 않는 최초의 움직이는 것'으로 신(神)을 내세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같이 초월적인 이데아를 인정하는 관념론자는 아니지만 역시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관념론적 입장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자연을 논하는 경우에는 유물론적 색채가 농후하다. 그의 논리학은 존재론, 인식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인식은 단순히 실험의 검증을 최후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 의하지 않고 정신의 작용만으로도 진리가 추정된다고 하면서, 귀납뿐만 아니라 연역의 중요성도 주장하고 있다. 그가 수립한 우주론(宇宙論)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지배하여 온 천동설이었다.
윤리학에서는 노예제 사회에서의 유한(有閑)계층의 사고에 부합하여 관조(觀照)를 정신 활동의 최고 형태라 하고, 그 모범을 가장 완전한 철학자, 자기 자신을 사고하는 사상으로서의 신(神)에게서 찾았다. 사회학에 있어서는, 노예제를 자연에 기인한 것이라 주창하고, 국가 권력은 그 최고 형태를 권력의 이기적 행사가 아닌,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론과 유물론의 2면성은 후세의 철학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중세의 기독교는 그의 관념론을 받아들여 신학 체계를 세우는 데 크게 이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사상은 이러한 관념론을 타파하는 유물론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철학사전, 2009., 임석진, 윤용택, 황태연, 이성백, 이정우, 양운덕, 강영계, 우기동, 임재진, 김용정, 박철주, 김호균, 김영태, 강대석, 장병길, 김택현, 최동희, 김승균, 이을호, 김종규, 조일민, 윤두병)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학문 전반에 걸친 백과전서적 학자로 과학 제 부문의 기초를 쌓고 논리학을 창건했습니다.
트라키아의 스타게이로스에서 출생, 플라톤의 학교에서 수학하고 왕자 시절의 알렉산더 대왕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B.C 335년 자신의 학교를 아테네 동부의 리케이온에 세웠는데 이것이 페리파토스 학파의 기원이 됩니다.
그는 플라톤의 비물체적인 이데아의 견해를 비판하고 독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지만 플라톤의 관념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에서 동요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존재와 그 구성, 원인, 기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학, 이것에는 제 1철학, 수학, 자연학이 포함되고 인간의 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실천학, 여기에는 윤리학, 경제학, 정치학이 포함되며 창조성을 대상으로 하는 제작술, 여기에는 시 등 예술활동이 포함됩니다.
제 1철학은 후에 형이상학이라 불리워지게 되는것이며 학문 연구의 대상은 일번적인 것의 획득이고 이 획득은 감각에 기초한 지각에 의해 개개 사물 가운데 있는 일반적인 것을 인식함으로써 성립하며 감각적인 것을 통하지 않고는 체험될수 없다고 보고 귀납을 인식의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물 생성의 조건이라는 의미에서의 원인으로는 질료- 생성의 수동적인 가능성, 형상- 질료에 내재하는 본질, 운동의 시원, 목적 등 네가지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체의 존재는 질료와 형상이 결합이며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화,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고 질료에는 수동성을 형상에는 활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운동의 시원과 목적을 형상에 귀착시켰습니다.
여기서 운동의 시원으로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것을 움직이는 것, 즉 움직이지 않는 최초의 움직이는 것으로 신을 내세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같이 초월적인 이데아를 인정하는 관념론자는 아니지만 또, 관념론적 입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자연을 논하는 경우 유물론적 색채가 농후하며 그의 논리학은 존재론, 인식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인식은 단순히 실험의 검증을 최후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 의하지 않고 정신의 작용만으로도 진리가 추정된다면서 귀납뿐 아니라 연역의 중요성도 주장합니다. 그가 수립한 우주론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까지 오랜 세월 지배해온 천동설이 있습니다.
윤리학에서 노예제 사회에서의 유한 계층의 사고에 부합하여 관조를 정신 활동의 최고 형태라 하고 그 모범을 가장 완전한 철학자, 자기 자신을 사고하는 사상으로서의 신에게서 찾았고 사회학에 있어 노예제를 자연에 기인하는 것이라 주창하고 국가 권력은 그 최고 형태를 권력의 이기적 행사가 아닌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론과 유물론의 2면성은 후세의 철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중세의 기독교는 그의 관념론을 받아들여 신학 체계를 세우는데 크게 이용했으나 동시에 그의 사상은 이러한 관념론을 타파하는 유물론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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