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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1
해결사123.08.26

강감찬장군은 무관이 아니라 키도 작은 문관이였다는데 맞나요?

강감찬장군은 등치도 크고 무술도 뛰어난 무관이 아니라 오히려 칼한번 안잡아본 키도 작은 문관이였다는데 맞나요? 그런 문관출신이 어떻게 귀주대첩의 승리를 이끌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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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은 문관이 맞습니다.

    고려시대엔 문관이 총사령관(정승급)에 무관이 부사령관에 임명되던 시기 입니다.

    그리고 강감찬은 36세에 과거를 통입신했습니다.

    지식이 있고 싸움의 병법이 뛰어나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강감찬 장군은 무관이었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941년(고려 태조 24년)에 태어나 1031년(고려 성종 20년)에 사망했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문과에 급제하여, 문관으로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강감찬 장군은 뛰어난 무공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곧 무관으로 전직했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고려의 명장으로,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일어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강감찬 장군은 거란의 1차 침입 때는 안동도호부사로서, 2차 침입 때는 귀주대첩을 이끌며 거란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뛰어난 무공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고려의 국방을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강감찬 장군이 문관이었다는 주장은 그의 문과 급제 기록을 근거로 합니다. 하지만, 강감찬 장군은 문과 급제 후에도 무관으로 전직하여 군 경력을 쌓았으며,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대장군에까지 올랐습니다. 따라서, 강감찬 장군은 무관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사에서 그는 평소에는 키도 작고 풍채도 볼품없어 사람들이 평소에는 특별히 여기지 않았지만,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할 때 정색하고 임해서 나라의 주춧돌이 되니 감히 범할 수 없는 권위가 있었다 라고 평가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은 고려시대 문관입니다. 983년(성종 3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시랑 한림학사를 거쳐 평장사가 되었습니다. 요나라의 3차침입을 격퇴하였고 1019년(성종 10년)에 검교태위 문하시랑 동내사 문화평장사 천수현 개국남 식읍삼백호로 봉해졌습니다. 1030년(현종 21년)에 문하시중이 되었습니다. 특히 거란이 현종의 입조가 이뤄지지 않은 것과 강동6주를 돌려주지 않은 것을 빌미로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3차침입 1018년(현종 9년)에 침입해오자 귀주에서 크게 물리치고 홍화진에서 수공을 펼쳐 살아돌아간 이들이 수천명에 불과할 정도일 정도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 장군은 키가 작고 칼을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문관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으로 귀주대첩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거란군의 약점을 파악하여 유인전술을 사용하여섬멸했고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군대를 지휘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그는 스파이 활동을 통해 거란군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했었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 그리고 정보 활용 능력으로 문관이지만 귀주대첩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