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다음 해, 방미사절단 ‘보빙사’ 일행은 통역과 함께 미국 순방길에 나섰고, 그들이 전해온 신문물에 감탄한 고종은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고합니다.
{오늘날 여러 나라의 국가 간 교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학이다. 이를 위해 공립학교를 설립하여 젊고 총민한 사람을 선발하여 학습하게 한다.
<육영공원 학칙> 중, ‘설립목적’}
이로 인해 1886년 조선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육영공원에서는 40여 명의 학생이 지리, 수학, 역사 등 모든 과목을 영어로 배웠고, 프리스턴대학, 다트머스대학 등 해외 명문대 출신의 원어민 교사를 채용해 철저히 회화 위주의 영어교육을 진행했다고합니다.
단, 육영공원은 고급 양반 자제들을 대상으로 운영했다면, 비슷한 시기 서양 선교사들은 배제학당, 이화학당 등의 사립학교를 세워 신분의 높낮이와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고 영어교육을 실시했다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