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방석 (芳碩)의 변 (1차 왕자의 난)이 있은 뒤 태조 (太祖) 이성계 (李成桂)는 정종 (定宗)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에 은거했습니다.
그 후 형제들을 살해하면서까지 (2차 왕자의 난) 왕위를 차지한 태종 (太宗) 이방원 (李芳遠)은 분노한 태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지만 태조가 번번이 활을 쏘아 차사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함흥차사’는 심부름 간 사람이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