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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5

조선시대에 청나라를 오가는 조선의 사신을 연행사라고 불렀는데 연행사는 어떤 일을 주로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 병자호란 이후에 조선은 청나라에 사신을 파견했는데 청나라를 오가는 조선의 사신을 연행사라고 불렀으며 연행사는 어떤 일을 주로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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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행사는 조선 후기 청나라에 보낸 조선 사신의 총칭이다. 조선 전기에는 명나라에 보내는 사신을 ‘조천사’라 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의 도읍인 연경에 가는 사신이란 의미로 ‘연행사’라 했다. 청의 도읍이 심양이던 시기에는 연 4회, 도읍을 연경으로 옮긴 이후에는 연 1회의 정기 사행이 이루어졌다. 모든 사행에는 외교문서·청원서 등의 사대문서를 전달하는 외교 행위 이외에 조공과 희사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연행무역이 병행되었다. 사행원 규모는 삼사라 불리는 정사·부사·서장관 각 1인을 포함하여 30인이었고 수행원까지 합하면 200인~300인에 달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연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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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26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청나라로 보낸 사신행차를 연행이라 했는데 이는 청나라의 수도가 심양에서 연경으로 옮겼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연행사는 매년 10월 말ㅇ리나 11월 초순에 출발해 그해 12월 안으로 연경에 도착해 40~60일 동안 머무른 뒤 2월 중 출발해 3우러 말이나 4월 초순에 귀국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새로운 학술, 학풍을 도입, 천주교와 서양 학문에 관한 서적을 들여왔습니다.

    이들은 여행 기간에 보고 들은 청나라의 역사, 문화, 사회, 사상, 풍속 등을 기록한 가사, 기행문, 일기 등을 남겨 국제 정치적 안목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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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명나라에 보내는 사신을 조천사라 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의 도읍인 연경(燕京: 北京)에 간 사신이란 의미로 '연행사(燕行使)'라 했다고 합니다. 북경에 체류하는 기일은 명대에는 40일이었으나, 청대에는 정한 기일이 없으며 대개 60일까지 체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하고 나중에 보고 하였는데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사행원들은 공적인 활동 이외에 사적으로 중국의 학자들과 접촉해 문화교류를 했고, 서점과 명소 고적 등을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1765년(영조 41) 서장관 홍억을 수행한 북학파 실학자 홍대용은 북경에 62일간 체류하는 동안 33일을 청의 학자와 교류하면서 서점가인 유리창과 천주교 성당 등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관람하였다고 합니다. 귀국하면 삼사는 국왕을 알현하고, 서장관은 사행 중에 보고 들은 문견록(聞見錄)을 작성해 국왕에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역관 중의 상위자인 수역(首譯)도 문건으로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사행의 정사 이하 정관이나 수행원들도 사행의 기록을 사적으로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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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적 활동 외교 문서인 표문 및 자문 제출, 방물 납부, 조회및 연회 참석등 의례 활동을 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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