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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동고비48
빼어난동고비4822.01.28

교도소에 가는걸 왜 콩밥먹는다고할까요?

우리가 교도소 보낸다 이런말을 할때 흔히 콩밥먹인다고 하잖아요 왜 콩밥을 먹인다고 이야기할까요?그리고 깜빵보낸다고할때 깜빵은 왜깜빵이라고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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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9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신랄한토끼19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교도소가 세워질 당시 우리나라의 교도소 콩밥이 유래된것은 '쌀 10%, 콩 40%, 좁쌀 50%' 등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서울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들이 먹었던 밥의 곡식 함유 비율이 소위 말하는 교도소 콩밥' 입니다. 그때 상징적인 의미로 콩밥 먹인다고 하였고 지금은 쌀밥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도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나름 괜찬은것같은 답변을 공유하려합니다

    "지금과 달리 옛날에는 쌀이 비쌌고, 그래서 오로지 쌀로만 밥을 짓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쌀과 콩을 적당히 섞어서 밥을 짓곤 했죠.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줘야 하는 감옥에서는 유일하게 콩밥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요. 그런 이유로 ‘콩밥’에 ‘감옥’이 관련되어 ‘콩밥을 먹다’라는 말이 ‘감옥살이를 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랍니다."

    깜방은 저도 찾아보긴했는데 그건 경상남도쪽 방언이라고 뜨더군요!

    새해복많이받으시고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 안녕하세요.

    콩밥이 이렇게 교도소를 상징하게 된까닭은 대부분 재소자들에게 콩밥을 먹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형무소 식단표를 보면 쌀 10% 콩 40% 좁쌀 50%로 지은밥을 제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86년부터 교도소에서는 콩을 전혀넣지않고 쌀과 보리만을 섞은 밥을 제공하게 되었으나 그 전까지 콩이 포함된

    식단이 주로 교도소에서 나왔기 때문에 평소 밖에서 먹던 식단보다 콩이 다량 포함된 식단이 특징이라 이렇게 표현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2.01.30

    안녕하세요. 젊은두루미148입니다.

    교도소에서 콩밥이 사라진 것은 1986년부터다. 지금은 쌀 90%, 보리 10%의 잡곡밥이지만 앞으로는 100% 쌀밥을 제공한다고 한다. 반면 옛날에는 주로 콩밥을 먹었다. 재소자 영양도 고려하고 값도 싸기 때문에 콩밥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감옥이 그렇게 휴머니즘이 넘치는 곳이 아니다.

    1957년 형무소 재소자들은 쌀 30%, 보리 50%, 콩 20%가 섞인 잡곡밥을 먹었다. 콩이 20%면 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때는 더했다. 1936년 형무소 식단표에는 쌀 10%, 콩 40%, 좁쌀 50%로 적혀있다. 이 정도면 콩덩어리에 좁쌀 몇 알 붙은 수준이다. 하루 세끼 이런 콩덩어리를 먹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얼마나 먹기 싫었으면 콩밥 먹는다는 말이 다 생겼을까? 콩밥이 어떤 식사였는지는 1936년 신문에 실린 동시(童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콩밥을 보면 넌더리가 나요. 우리 집은 매일 콩밥만 짓지요. '엄마, 나 콩밥 먹기 싫어, 쌀밥 지어, 응'하고 졸랐더니 엄마는 '없는 집 자식이 쌀밥이 뭐냐. 어서 먹지 못하겠니'라며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꿈쩍도 못하고 안 넘어가는 콩밥을 억지로 넘겼지요."

    교도소에서 쌀밥을 준다니 느낌이 묘하다. 앞으로 "콩밥 먹는다"는 말 대신 "쌀밥 먹는다"는 말이 생기겠다.


  • 안녕하세요. 화사한박새121입니다.

    주로 밥이 콩밥이 나온다고 해서 콩밥 먹인다고 하고 깜빵은 감방 의 경남지역 방언 이구요 감방 뜻은 범죄자 가두는 방 입니다


  • 안녕하세요. 교도소에 가는 것을 콩밥 먹는다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게 된 유래는 일제강점기 당시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들이 먹었던 밥이 쌀 10%, 콩 40%, 좁쌀 50%와 같은 비율의 콩밥이었기 때문에 교도소에 가서 콩밥 먹는다는 식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다만 현 시기에는 콩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깜빵의 경우 감방(교도소에서, 죄수를 가두어 두는 방)의 경남 방언입니다.


  • 안녕하세요.

    지금은 건강 등 웰빙이 중요해서 콩밥이라던지 잡곡밥이 더 우수하게 여겨지지만, 예전에는 쌀밥이 귀해서, 잡곡밥 보리밥 콩밥을 쌀을 아끼기 위해 먹었습니다. 당연히 교도소에서 무조건 쌀밥만 줄수 없어 콩밥 등을 많이 주어서, 그런 말이 붙은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옥희 심리상담사입니다.

    콩밥 먹는다 - 감옥 간다 의 공식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라고합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절대로 콩밥을 먹지 않는다. 예전에는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콩밥'이 최상 해결책 이였으나, 86년에 폐지, 현재는 급식향상을 위해 쌀과 보리의 혼합률이 9 :1로 상향조정되어 일반 가정식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 안녕하세요. jidoja입니다.

    "콩밥 좀 먹어봐야 정신차리지"

    사건 사고 기사에 흔히 나오는 반응입니다.

    '콩밥먹다'라는 표현은 '구속되어 교도소에 간다'라는 의미로 흔히 쓰이죠.

    ▲서대문 형무소 급식, '콩 5-좁쌀 3-현미 2'의 콩밥

    독립문 부근에 있었던 서대문 형무소는 서울에 있었던 만큼 그나마 다른 지역에 비해 일제가 나름 공을 들였다.

    식단도 콩 50%, 좁쌀 30% 현미 20%로 구성해 보통 옥수수로만 배를 채워야 했던 다른 형무소와 달랐다.
    이때 '콩밥'이라는 용어가 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다.

    ▲일제시대엔 보리밥, 옥수수로 만든 주먹밥에 해초가 반찬

    예나 지금이나 옥살이를 하는 이에게 주는 밥(식사)은 그 시대 기준으로 하급에 속한다.

    나랏돈을 들여 죄를 지은 이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할 수 없는 탓이다.
    교도소(감옥) 식단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경제사정이 윤택해지고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현실과도 비례한다.
    일제시대 형무소는 기본적으로 보리와 옥수수를 섞어 만든 주먹밥을 재소자들에게 줬다.

    반찬은 해초무침 등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어린이 주먹만한 크기여서 수형자 대부분 영양실조에 걸렸다.

    이 상태에서 강제노동 등에 시달렸기에 죽어나가는 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교정시설 밥의 역사…

    요즘엔 '쌀밥' 먹습니다. (자료 출처: 법무부)

    2014년 '형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형 집행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교정시설 재소자들에게 '100% 쌀밥'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형 집행법 시행령 제28조(주식의 지급) ① 수용자에게 지급하는 주식은 쌀로 한다.

    쌀 수급이 곤란하거나 그 밖의 필요가 인정될 때 혼합곡을 지급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교도소 밥=쌀밥'입니다.

    1957년에 처음 정해진 교정시설 주식 혼합비율 지침은 '쌀 30%, 보리 50%, 콩 20%'였습니다.

    일찍이 1986년에 '쌀 50%, 보리 50%'로 지침이 바뀌면서 콩밥은 사라졌고,

    보리의 비율도 점차 낮아지다가 보리수매제 폐지로 값싼 정부 보리가 없어지자 100% 쌀밥이 주식이 됐죠.

    (그래픽 참고: 교정시설 주식 혼합비율 지침 변화)

    1989년 쌀 60%, 보리 40%

    -> 1994년 쌀 70%, 보리 30%

    ->1995년 쌀 80%, 보리 20%

    -> 2008년 쌀 90%, 보리 10%

    -> 2014년 6월 쌀 100%

    '콩 자급률이 낮아져서 교도소 콩밥이 사라졌다' 등의 설이 있지만,

    법무부에 따르면 콩밥이 없어진 진짜 이유는 식단에 고기반찬이 포함되는 등 단백질 공급원이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콩밥은 옛말, 쌀밥에 고기반찬까지 나오는 요즘 교도소 식사.

    담장 밖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교정 행정을 엿볼 수 있는 항목입니다.

    감옥의 변천사

    조선시대엔 형조와 병조, 사헌부, 포도청, 각 고을 수령이 나름의 감옥을 운영했다.

    특히 법을 다루는 형조의 부설 감옥인 '전옥서'는 양반 등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일제는 1923년 5월5일 총독부령 72호를 통해 죄인을 가두는 지옥 같은 곳이라는

    무시무시한 뜻의 '감옥'(監獄)에서 형 집행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형무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러다가 1961년 12월23일 형법 개정을 통해 수형기간 동안 올바른 교육을 해 참된 이로 재탄생시킨다는

    뜻의 '교도소'(矯導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은어로 깜방, 빵, 큰집, 학교라고도 부르지요. 깜빵은 감옥의 은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