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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에게는 16명의 왕자가 있었지만 폐비 윤씨의 이후 왕비로 간택된 세번째 왕비 정현황후 윤씨 사이에 낳은 진성대군 이외는 후궁 소생입니다. 연산군이를 폐위하고 성종의 적자로서 진성대군은 왕위 계승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사대부들이 신봉했던 성리학 사상을 바탕이 반영되었습니다. 사대부들은 <맹자>의 국왕이 잘못하여 천명을 잃을 경우, 왕위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혁명’ 사상을 반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