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은 조선의 수군과 비교하면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세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1543년에 포르투갈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선박과 기술을 수입하였으며, 그 이후로 대량의 조선 청년들이 일본에 유학하면서 일본 항해술을 배웠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대적으로 사정거리가 긴 함포를 가진 조선 수군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집중 사격을 가해 적선을 격침시키는 전술을 썼다고 합니다. 반면에 일본 수군은 빠른 속도로 상대의 배에 접근한 뒤 배 위에 올라 백병전을 펼치는 등선육박(登船肉薄)이란 구식 전법을 고집했다고 하지요. 권투로 치면 조선 수군은 아웃복서, 일본 수군은 인파이터였던 셈입니다. 결과는 조선 수군의 연전연승.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화약과 화포를 개발해 200년이 넘는 함포 사격의 노하우가 축적된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7의 전쟁 기간 동안 24회의 해전에서 일본 군함 700척을 격침시키고 23척을 나포했던 반면, 전투로 인한 군함 손실은 전라좌수군의 사상자는 모두 165명이었는데 그 중에 두 척의 거북선에 탑승한 사상자가 24명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수군 병력은 총 8,750명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바다의 도둑을 의미하는 해적임과 동시에, 일본이라는 땅 자체가 섬나라여서 옛부터 바다를 근거로 하는 해상 세력이 많았습니다.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패한 와키자카의 경우에 1,5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일본군의 선박의 수는 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으로 모두 합해 73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