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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나
잠이나19.11.20

과거에 미국과 멕시코 전쟁이 난 배경이 무엇이고 승리로 미국이 가지게 된 땅은 어디인가요

과거에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전쟁이 난 적이 있는데 이 전쟁이 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어느 땅을 가지게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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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배경과 영토분쟁에 대한 기사입니다. 읽어보시고 도움되길 바랍니다.

    멕시코는 오랫동안 트럼프에게는 물론 미국에도 앙숙이었다. 지금은 이민자 문제지만 19세기에는 영토를 놓고 으르렁거렸다. 미국 보수파의 아성인 텍사스는 1845년 미국의 28번째 주가 됐다. 그 곳은 원래 멕시코 코아우일라 테하스 주의 테하스 지역이었다. 텍사스(Texas)와 스페인어 테하스는 같은 철자다. 당시 멕시코 영토였던 이곳에는 텍시언으로 불리던 앵글로색슨계 주민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멕시코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미국 합병에 앞서 분리 독립부터 노렸다. 텍사스 의용군은 1835년 12월 지역 중심지 산안토니오 데 벡사와 인근의 알라모 요새를 점령했다. 지금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시다.

    당시 멕시코 공화국 지도자인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1794~1876)는 1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진압에 나섰다. 산타 안나는 대통령도 여러 차례 한 인물이다. 의용군 186명은 13일간 포위됐지만 항복을 거부하고 싸우다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전사했다. 미국이 영화로 만들어 두고두고 반추하는 ‘알라모 요새 전투’다. 알라모는 전설이 됐다. 이 소식을 들은 텍시언들은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병력과 보급이 부족한 가운데 1836년 4월21일 샌재신토 전투에서 멕시코군을 물리치고 독립을 이뤘다. 미국인들은 이를 ‘텍사스 독립전쟁’ 또는 ‘텍사스 혁명’이라 부른다. 텍사스 공화국은 워싱턴 의회의 승인으로 미국의 28번째 주가 됐다. 텍사스는 지역 서쪽의 ‘리오그란데강 동안’도 합병하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미 연방군이 1846년 점령해 뉴멕시코라는 이름으로 별도 통치했다.

    “텍사스 공화국을 미국에 합병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산타 안나는 합병이 이뤄지자 전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승리를 뒷받침할 힘이 없었다. 1846~48년의 미국-멕시코 전쟁은 멕시코의 패배로 끝났다. 그 결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맺어져 거대한 영토가 미국으로 넘어갔다. 현재의 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 전체에 애리조나 대부분, 뉴멕시코 절반, 콜로라도의 4분의 1, 와이오밍의 일부에 해당한다. 현재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은 1853년 미국이 1500만 달러(현재 가치로 3억 8100만 달러)를 주고 멕시코로부터 매입했다.

    영토와 함께 이 지역에 살던 멕시코계 주민도 미국에 넘어갔다. 지금 미국의 히스패닉 인구는 최근의 불법이민으로만 형성된 게 아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하는 1995년 할리우드 영화 ‘구름 속의 산책(A Walk in the Clouds)’에선 캘리포니아에서 포도주 농원을 운영하는 멕시코계 주민이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너희가 미국이란 나라를 만들기 전부터 이 땅에서 포도주를 만들었다.” 멕시코계 미국인은 이같은 긍지를 갖고 있다.

    멕시코는 본국인 스페인이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힘이 빠지자 1821년 독립했지만 계속된 내란으로 나라는 갈수록 허약해졌다. 북부에선 아파치·코만치·나바호 등 원주민 부족들이 가축을 약탈해 미국에 팔기까지 했다. 북미 전역을 지배하고 개발하는 ‘명백한 운명’을 하느님에게 명령받았다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은 그렇게 허약한 멕시코를 영토 사냥의 대상으로 삼았다. 힘이 없으면 당하기는 19세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0546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