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4.01.07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연산군이 폭군이 된 이유는 어머니의 폐위와 죽음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잖아요.

근데 폐비 윤씨는 왜 폐위 되었으며, 어떻게 죽은 건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폐비 윤씨의 폐위는 덕종(의경세자)의 후궁인 귀인 권시 집에 날아든 언문투서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귀인 권씨 집에 날아든 투서에는 당시 성종의 총애를 받던 소용정씨와 숙의 엄씨가 왕비 윤씨와 원자(연산군) 모자를 해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중전 윤씨가 어머니 부부인 신씨와 나인과 여종 등 주변 사람들을 시켜 꾸며낸 일이 드러나자, 중전의 도덕적 결함을 두고 대왕대비와 성종은 윤씨를 폐위하고자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비 윤씨가 극약인 비상(砒霜)을 갖고 있었던 일과, 굿을 하는 방법을 적은 서책을 성종에게 들킨 일 또한 성종이 윤씨에게서 마음을 돌린 이유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윤씨는 폐위되어 서인이 되었고, 나중에는 사사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폐비 윤씨는 성종과 사이가 좋지 않고 불화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술을 써놓은 방양서와 비상이 묻은 곶감을 발견하면서 부부관계가 파탄이 나는 등

    성종과의 불화로 인하여 폐위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24일~ 1482년 9월 7일)는 조선 성종의 두번째 왕비이며, 연산군의 친어머니입니다.

    폐비 윤씨는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1473년 3월 숙의에 봉해졌습니다. 윤씨는 입궐 후 검소하고 온화한 태도로 성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정희왕후, 안순왕후, 소혜왕후로 부터 신뢰를 얻었습니다. 1476년 공혜왕후가 죽고 왕비로 책봉되어 연산군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투기와 저주 행위 등의 부도덕함으로 인해 1479년에 폐위된후 1482년 사사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폐비윤씨는 성종의 총애를 받으며

    1476년 왕비로 책봉되었는데

    왕비가 되고나서 그 특유의 질투심으로 부덕한 일을 여러차례 일으킵니다

    그리고 1477년 비상을 숨겨

    왕과 왕의 후궁을 독살하려는 혐의를 받게되어 빈으로 강등되었습니다.

    또한 1479년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를 분노하게 하여 폐비윤씨는 폐비가 되어 친정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이후 자숙을 하는 도중 폐비윤씨에 대한 동정여론이 생기자

    성종은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내리고 폐비윤씨를 사망케 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답변자에게 힘이되는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9대 성종의 계비이자 10대 연산군의 친모입니다. 성종의 원비인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투기와 저주 행위 등의 부도덕함으로 인해 1479년에 폐위된 뒤 사사되었습니다. 윤씨는 입궐 후 검소하고 온화한 태도로 성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당시 왕실에는 세명의 대비 정희왕후 안순왕후 소혜왕후가 있었는데 윤씨는 이들로부터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왕비책봉 이후부터 달라져 투기를 하고 왕에게 다소 과격한 언행을 일삼다가 폐위되어 사가로 쫓겨나게 되었고 사사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일설에는 왕의 심부름꾼이 온다는 소식에 단장하고 기다린 것이 끼를 부르며 호위호식한 모습으로 보여져 뉘우침이 없다고 하여 사사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