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천출은 상위 계급이 될 수 없었나요?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기에 이의민같은 천출이 최고권력자가 되기도하고 충렬왕이 세자시절 원에 다녀올때 강을 건너 원종이 폐위되었다고 알린 이후 천민이 상장군까지 오르기도 했는데 조선에서는 이와같이 상위계급이 되는길은 전혀없었나요?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양천제 신분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세습되었습니다.
양반으로 태어나면 양반이 되었고, 천민으로 태어나면 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양반이 중대죄를 지으면 신분이 급락해 천민이 되기도 하고,
천민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양반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장영실 같이 능력을 인정받아 관직에 오른 예가 있으나 이러한 특수한 사례가 조선의 신분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천민 출신으로 출세한 인물 사례로 신빈 김씨가 있습니다. 신빈 김씨는 조선의 4대 왕 세종의 후궁으로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1418년 원경왕후에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고, 세종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습니다. 이후 행실이 바르기에 정1품 신빈에 책봉되었습니다. 또한 영조의 모친인 숙빈 최씨도 분명하지 않지만 출신이 반궁촌 천민 출신, 그리고 입궁해서도 무수리 출신입니다.
또한 조선 중종 대 문신, 반석평은 어우야담에 따르면 노비 출신 재상으로 일컬집니다. 그가 어렸을 때 재상은 반석평의 순수하고 명민함을 아껴 시서(詩書)를 가르쳤는데, 여러 아들 조카들과 더불어 같은 자리에 앉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반석평이 성장하자, 재상은 이대로 노비로서 썩히는 걸 몹시 아깝게 여겨 시골의 아들 없는 사람에게 양자로 주었다고 하네요. 이후 주인집과 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종적을 감추고 배움에 힘쓰게 했다고 합니다. 반석평은 신분을 숨긴 채 과거에 응시해 급제한 그는 겸손하고 공경하여 순조롭게 출세하여 관찰사를 역임하며 정 2품에 이르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