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를 만든 왕산악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요즘에 국악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왕산악이 어떻게 거문고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어떤 업적이 있길래 한국의 3대 악성이라 불려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산악은 고구려의 음악가로, 거문고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산악이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동국통감>등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거문고를 연주하던 중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산악은 고구려의 음악가로 거문고를 제작했으며 또한 거문고 연주의 대가 입니다.
신라고기에 따르면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냈는데 당시 고구려 사람들은 이것이 악기인줄은 알았으나 연주하는 방법을 몰랐고, 이에 나라에서 칠현금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구했는데 당시 제이상으로 있던 왕산악이 칠현금을 개량해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100여 곡을 지어 연주했습니다.
이 때 현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으므로 이 악기를 현학금이라 했고 이후 현금이라 불렸습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문고의 제작자이며 거문고 연주의 대가이다. 『신라고기(新羅古記)』를 인용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晉)나라에서 보낸 칠현금을 개량하여 새로운 현악기를 만들었는데, 그 개량된 악기가 바로 오늘날의 거문고(玄琴)이다.
당시 그는 고구려의 제2상(第二相)의 자리에 있었는데 그가 만든 새 악기로 100여곡을 지어 연주하였더니,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로 만든 악기를 현학금(玄鶴琴)이라고 하였으며, 뒤에 현금이라 불렀다고 전하여진다.
그가 언제 거문고를 만들었는지는『삼국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가 거문고를 만든 연대는 문헌자료와 고고학자료에 의하면 4세기 무렵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357년에 축조된 안악(安岳) 제3호분 벽화에 그려진 거문고의 연주모습이나, 집안(集安) 무용총 벽화에 나타난 거문고의 연주 모습이 그러한 추정의 근거가 되는 고고학자료들이다. 그리고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낸 진나라는 서진(西晉, 265∼316)이 아니라 동진(東晉, 316∼419)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