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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6.01

칭키즈칸 이후의 몽골제국은 왜 쇠퇴했나요?

칭키즈칸의 몽골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습니다. 이런 몽골제국이 칭키즈칸 사후에는 점점 쇠퇴한 것으로 아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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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열대 지방에까지 진출했던 몽골 제국이 분열 이후 열대와 온대 농경 지대를 상실하고 급속도로 유목민족 중심의 초원 지대로 밀어올려진 건 근본적으로 몽골 제국의 지배 체제 자체에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몽골 제국이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몽골의 자체적 문화적 역량의 부족과 경제적 역량의 부족이었다고 봐도 되는데, 유목민족 특유의 적은 인구가 저 두 요소를 야기함과 동시에 심화하여 몽골 제국의 존속 가능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줬다.

    칭기즈 칸이 정복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의 몽골 인구가 80만 내외로 추정되는데, 이는 1억 3600만에 달하던 중국(금+남송)은 물론, 350만~450만 정도로 추정되는 고려, 450만~800만 사이로 추정되는 키예프 루스에 비해서도 훨씬 적은 인구였다. 즉, 고려의 1/3도 안 되는 인구로 그 넓은 영토와 엄청난 피지배 인구를 거느린 대제국을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몽골의 침공으로 중국, 고려, 루스, 페르시아, 아랍 등의 인구가 크게 줄었고, 몽골인은 통일과 피지배 민족에 대한 착취로 어느 정도 늘기는 했으나, 여전히 인구에서 몽골인은 피지배 민족들에 비해 절대적 열세였다.

    몽골 제국은 엄청난 판도를 자랑했지만 내전을 치르면서 각 지역별로 분열하게 되었고, 초원에서 가축을 치던 유목민이 인구의 대부분이었던 몽골인들에게는 중국인, 고려인, 아랍인, 투르크인, 쿠르드인, 페르시아인, 슬라브인 등 훨씬 높은 문화적 수준을 지닌 피지배 정주 민족들을 동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문화적 역량도 없었다. 인구가 많다면 혼혈 정책을 펼쳐 억지로 밀고 들어가 혈통 의식이라도 심을 수 있었겠지만, 인구에서도 피지배 민족들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혼혈 정책을 펼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적은 인구와 낮은 문화적 소양 때문에 몽골인들이 기존 농경 정주 민족을 다스리던 유목민 왕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지배 민족들에게 동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원이나 여타 다른 몽골계 국가들에서 피지배 민족에 동화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피지배 민족들을 몽골에 동화시키려 했으나 결국 이들을 동화시키지 못하고 결국 피지배 민족들의 반란으로 점점 쫓겨나며 쇠락하였다. 오히려 몽골로 돌아가지 못한/않은 몽골인들은 높은 문화적 역량과 많은 인구를 지니고 있던 중국, 한국, 튀르키예, 아랍, 이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 동화되었다.

    그나마 티무르나 무굴의 경우를 봤을 때 몽골 제국의 지배층과 통혼하던 중앙아시아 및 그 주변 지역의 유목민족계 지배층들 중 일부에게는 18세기 무렵까지 몽골인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하나, 이들의 몽골 계승 주장은 사실상 통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이들을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문화적/혈연적 정체성은 아니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나마도 18세기 이후 각지의 민족 의식 혹은 국가 의식이 강화되며 사라지거나 영국,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으며 완전히 사라졌다.[57]

    때문에 몽골 제국은 그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각지에 몽골인들을 보내 살게했지만 대부분 소규모 지배층 및 중간 계층에 불과했고, 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던 제국의 지배력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피지배 민족이 되자 너무나도 쉽게 지배자가 된 압도적 다수의 피지배민들에게 혈연 정체성과 문화 정체성 둘 다에서 동화되어 버렸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몽골인의 후손으로서 자각과 정체성을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 몽골 제국의 본토이자 칭키즈칸 이전 시대 몽골의 영역인 외몽골과 내몽골 출신의 몽골인들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더해서 몽골 제국은 자체적 인구와 경제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피지배민들에게 다양한 세금을 엄청나게 높은 세율로 징수했는데, 복속 이전보다 훨씬 높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던 피지배 민족들의 반발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몽골 제국이 피지배 민족들의 반발을 감수하고라도 엄청난 세금을 물렸던 이유가 있는데, 농업이 가장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던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몽골인들의 본거지인 몽골 지역의 토지 중 대부분은 농경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몽골의 자체적 경제 역량으로는 대제국을 경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거기다 이런 자연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몽골은 자체적으로 국가 경제를 경영하며 국력을 유지할 수준의 인구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몽골은 빠른 기동력과 기마궁병의 전술적 우위를 이용하여 정주 농경민들의 국가들을 정복한 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 역량을 피지배 민족들에게 의지하는 사실상 약탈 경제 혹은 기생 경제 체제를 구성했다. 더 나아가 정복지의 치안 유지 능력은 물론 군사력조차도[58] 사실상 이렇게 정복하여 지배한 정주 농경민 피지배 민족들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때문에 몽골 제국은 대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자금을 이들 피지배 민족들에게서 세금 및 조공으로 받아내거나 약탈해온 물자들과 농경 민족들 간 교역을 독점하며 챙긴 마진 이익으로 충당했다.

    이렇기 때문에 정주 민족들이 몽골식 기마궁병에 익숙해지면서 대응 전략을 세우게 되면서 칭기즈 칸 이래의 몽골의 전술이 파훼되고, 더이상 몽골식 기마궁병이 전술적 우위를 지니지 못하게 되어 정주 민족들을 빠른 시간 안에 제압할 수 없게 되자 몽골 제국과 반기를 든 피지배 민족 간의 전쟁은 지구전 겸 소모전이 되었다. 자체적인 인구와 경제력이 부족한 데다 각지의 반란 및 외침과 내분이 겹친 탓에 피지배 민족에 대한 동원 능력마저 떨어져 이런 식의 전쟁에 대한 지속 능력이 부족했던 몽골인들은 자신들에게 반기를 든 피지배 민족을 차래로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피지배 민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하나 둘 상실하기 시작하자 몽골 제국의 경제 붕괴에 더욱더 속도가 붙어 빠르게 제국이 무너지게 됐다.

    출처: 나무위키 몽골제국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토크기에 비해서 몽골인구가 굉장히 부족했고

    그리고 전투능력은 뛰어났지만 정복한 영토를 관리감독할 행정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칭키즈칸이 거대한 몽고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칭키즈칸이 죽고나자, 거대한 원나라 땅은

    칭키즈칸의 아들에 의해 분할되고야 맙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정복군주 칭키즈칸이 없어진 몽고제국은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중국 본토에서의 반란에 의해 명나라가 세워졌구요..

    칭키즈칸에 의해 분할된 광할한 땅도 그 지역의 원주민에 의해서

    세력을 잃게 되죠..

    결국 몽고제국은 갈기갈기 찢겨졌습니다..

    몇백년이 흐른 지금.. 그 초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칭키즈칸의 혼을 이어받아서 만든 나라가 몽골 입니다.

    원 나라는 칭키즈칸 이후에 멸망했다고 봐도 되죠...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몽골 제국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몽고의 멸망은 역참제도의 부패가 주된 원인인데 역참은 전통시대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인데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영접, 공공 물자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기관입니다. 원나라는 동쪽으로 고려, 서쪽으로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영향력이 확장되어 있었는데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그러한 국가의 규모가 아니었 습니다. 때문에 몽골제국은 국가운영 대책방안으로 역참 제도를 실시하여 순전히 역참에 의존해 거대 국가를 운영했던 것입니다. 몽골제국 초기 물자 운송에만 이용되던 역참이 국가 행정을 위한 문서 전달에도 이용되면서 그 사용빈도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역참 운영을 책임지는 참호들의 부담이 커지고 이와 더불어 역참이 남용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역참 이용 증명서 없이 자신의 직위를 내세워 역참을 이용한다든지, 상인들이 고위관직과 의기투합하여 역참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당시 국가는 너무나 거대했고 역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역참 남용을 금하려 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역참 운영의 책임은 순전히 참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역참을 버리고 도망치는 참호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국가운영의 전반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역참의 기능이 악화되면서 몽골 제국은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고 이후에 명을 건국한 한족에게 전쟁에서 패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 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