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촉오시기에 종회는 동성애자였나요?
고대시기에는 동성애가 꽤 흔한 일이긴했는데 서양사에서 자주 보이는 것과 달리 동양사에서는 자주 언급된 것 같지는 않은데 위촉오시대에 종회는 동성애자였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회의 게이설이 제기되는데, 근거가 제법 뚜렷합니다.
일단 중년의 나이에 처자를 뒀다는 기록이 없는데 종회는 역모죄로 죽었으니 보통 사람 같으면 삼족을 멸했다는 일반인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서술이 뒤에 붙어야 하나 종회는 맡아 기르던 조카들에 대한 처분만이 거론됩니다. 서술이 아예 없으면 그냥 일족을 멸했는데 안적었구나 할 법하나 조카들에 대한 처분은 적으면서 처자에 대한 기록이 없어 진짜 자식과 처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당시는 원한다면 어디 오랑캐 진영에 쳐들어가 여자 하나 잡아다 결혼해도 되는 시대였습니다.
종회가 꽃미남이면서 여장 취향을 가진 하안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세설신어에 따르면 당시 종회는 옥에 갇힌 하후현에게 압 하려했다고 하는데 압은 허물없이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지만 희롱한다는 뜻도 있으므로 , 원해 하후현과 아무 교분도 없고 16세나 연하였던 종회가 이제 사형을 눈 앞에 둔 그를 상대로 갑자기 집적거렸다는 이야기 입니다.
하후현은 내가 비록 형장의 길로 가는 사람이지만 그대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종회의 제안을 거절, 만약 순수하게 하후현을 존경해 교분을 갖고자 한 것이라면 내가 비록 죽을 사람이지만 이라는 표현으로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즉 희롱했다는 의미 쪽이 맥락에 더 맞습니다.
촉 종벌 이후 반란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도 강유한테 반해서 그랬다고 하면 말이 되는데, 이때 강유는 60대 노인이라 종회와 최소 20년은 나이 차가 발생, 하후현도 종회에게는 상당히 연상인 점, 종회가 늦둥이라는 점으로 무의식중에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 줄 다른 남자를 갈구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단순히 인성이 덜 되고 성격이 좋지 않아 결혼을 못했을 수 도 있고, 하후현을 희롱했다는 것도 출처가 세설신어라 신빙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또 당시 이미 종회가 게이였다는 소문이 퍼져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수 도 있으나,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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