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근친 동성애가 많았나요?
어제 시작한 kbs사극을 보니 궁중에서도 근친 동성애가 그려지더라고요.
실제 고려사화가 여타 시대에 비해서 근친 동성애에 관대한 사회분위기였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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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의 성문화는 대단히 개방적이었습니다.
왕건의 넷째 아들 왕소와 셋째 딸 황보씨는 이복남매이자 부부로, 왕소의 두번째 부인은 이복형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였던 경화궁부인 임씨입니다.
이는 왕족의 순혈주의와 외척 세력을 견제하려는 방편이었으나 엄연한 근친 이었고, 공민왕은 자제위라는 기구를 만들어 미소년을 궁에 출힙하게 했으며 동성애를 즐기거나 임금의 침실에서 집단 간음을 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혼탕이 대중적이었고,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것들을 적은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 사람들은 남녀가 가볍게 연애하고 헤어진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반 민중에서뿐 아니라 왕실에서도 왕과왕비가 재혼이었던 경우가 흔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이나 귀족계층에서 동성이든 이성을 불문하고 근친혼이 성행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동성불혼과 함께 동성 근친혼을 형벌을 과하면서까지 금하였으므로 동성불혼의 법이 자리를 잡았으나 이성근친혼은 여전히 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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