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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유주의 요동군 양평현 출신 공손도(公孫度, 150년~204년)는 아버지를 따라 현도군으로 옮겨 살다가, 189년 같은 고향인 서영의 추천으로 당시 한나라 승상 동탁에게 요동태수로 임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 내부에서 민란인 ‘황건의 난’이 일어나 외부인 요동을 넘볼 여력도 없던 차에 마침 그쪽 지역에 밝은 공손도가 스스로 요동태수가 되겠다고 나서니 그냥 추인했거나 그러한 사실이 없음에도 첨가한 기록으로 보입니다. 즉, 한(나중에 위)와 고구려 사이인 요동 지역에 공손씨 세력이 50여년 동안 독자적인 세력으로 존재했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고국천왕이 죽고 동생들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전개되었습니다. <삼국사기>따르면 고구려 고국천왕 사후 발기가 동생 산상왕과의 왕위 쟁탈전에서 밀려나 연노가(涓奴加)와 함께 하호 3만 명을 이끌고 공손도에게 망명하고, 발기는 공손도에게서 3만 명을 지원받아 고구려로 쳐들어갔지만 동생 계수(산상왕)와 을파소에게 패하고 자살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97) <삼국사기> 권 16 고구려본기, 산산왕 원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