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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07.30

통행금지가 언제 생겼고 언제 해제되었나요?

과거에는 통행금지시간이라는것이 있어서 통행시간을 어기면 경찰서 잡혀가기도 했었는데 이 통행금지가 언제 왜 생긴것이고 언제 전면적으로 해제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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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대견한수달138입니다.

    1945년 9월 7일 미군정청이 질서유지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서울과 인천에 포고령을 내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다 6·25전쟁이 일어나며 더욱 강화됐고, 휴전 이후에도 치안유지를 내세워 계속 시행했습니다. 1954년 4월에는 전국으로 확대됐고 시간도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여섯 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1961년부터는 다시 네 시간으로 축소됐으며 1964년 제주도, 1965년에는 충청북도가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통금 위반으로 적발되면 즉결심판에 넘겨져 벌금을 물었습니다. 먹고사는 데 한 시간이 아까운 서민들에게는 족쇄와 같은 제도였습니다.

    그런 족쇄를 풀어 준 것은 다름 아닌 88올림픽이었습니다. 1올림픽 개최지 선정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통행금지 상태에서 올림픽을 치를 수는 없었습니다. 1982년 1월 5일 정부는 군사적 위험 요소가 크다고 판단되는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 야간통행금지를 전격 해제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36년 4개월 만에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통행권을 돌려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톰아저씨크루즈여행^*^입니다.


    1945년 9월부터 37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조치가 1982년 1월 5일 해제가 되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는 1945년 9월, 미국의 군정사령관 존 R.하지(John R. Hodge) 중장의 군정포고 1호가 발동되면서 시작된 이래, 빈곤 속에서 횡행하는 범죄를 줄이는 등 순기능도 있기는 했지만, 국민의 야간생활 통제는 물론 인신(人身)을 구속하는 수단 등으로 작용함으로써 순기능보다 훨씬 많은 반발과 역기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존속한 군국주의의 산물로서, 그 동안 이승만(李承晩) 독재정권과 박정희(朴正熙) 군사정권의 국민통제 수단으로 널리 이용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던 차에 1981년 3월 출범한 제5공화국의 전두환(全斗煥) 군사정권은 비정상적인 정권 탈환에 따른 국민의 반발을 무마시키려는 속내를 감춘 채 시의 적절하게 야간 통행금지조치 해제계획을 진행하였고 1981년 11월 19일,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민주한국당·국민당이 만장일치로 야간 통행금지 해제건의안을 채택하기로 합의하고, 그해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건의안을 통과시킨 뒤, 이듬해 1월 5일 드디어 해제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