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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국제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당에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 조정은 이들을 대상으로 빈공과를 시행하여 관리로 임용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신라인이 80여명으로 가장 많고 우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에서 대우는 좋지 않았습니다. 당의 관직이 비관, 용관에 불과했으므로 귀국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다만 일부 숙위학생들이 황제의 종난공신이나 장사 또는 칙사로 이용되는 등이 최고의 대우였기 때무에 결국 그곳의 문인들과의 교우를 통해 자신을 실력을 과시하는 정도입니다. 최치원은 18세에 빈공과에 합격하여 당나라 선주 율수현위가 되었습니다. 이후 회남절도사 고변의 추천으로 관역순관, 황소의 난 당시 고변이 제도행영병마도통이 되어 출정할 때 종사관으로 활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