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민화가 유행한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민화가 유행했는데요 그렇게 유행한 시대적인 배경과 그 대표적인 작품과 작가 그리고 민화가 왜 쇠퇴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민화가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격외적인 것은 외래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민중들이 그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 민화를 그린 민중 화가들은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린 그림은 귀족들의 그림보다 세련미나 격조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은 나름대로의 정서를 잘 표현한 ‘좋은’ 그림입니다. 좋은 그림은 화가가 누군지 가리지 않습니다. 대신 얼마나 생각을 잘 표현했는지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민화가 좋은 그림이라고 하는 겁니다.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왼쪽에 보는 그림은 조선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 즉 ‘소나무 밑의 호랑이’라는 주제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아마 조선 최고의, 아니 한국 최고의 호랑이 그림일 겁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대단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호랑이의 털이 어느 하나도 흐트러진 게 없다는 점입니다. 털 하나하나에 모두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그림을 부분적으로 확대해도 털이 갖고 있는 힘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역시 단원은 조선 최고의 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옆의 그림을 보십시오. 같은 주제로 그린 그림인데 모습이 영 다릅니다. 어딘가 치졸하고 소박하게 보이지요? 이게 민화입니다. 단원의 그림은 말할 수 없이 정제되어 있어 높은 품격을 느끼게 되는데 이 그림을 보면 웃음부터 피식하고 나옵니다.
얼굴을 비롯해서 전체적인 모습이 친숙하고 코믹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몸통이 이상하지요? 몸이 이렇게 그려진 것은, 한쪽은 앞에서 본 대로 그리고 다른 한쪽은 옆에서 본 대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민화 화가들은 사물을 꼭 한 방향에서 보이는 대로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입니다. 이런 화법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요. 네, 피카소입니다. 그가 따랐던 입체주의(cubism)에서는 사물을 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여러 시각에서 보는 것을 선호했지요? 민화 화가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민화의 역사를 훑어본다면 선사 시대에 그려진 암각화까지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범위가 너무 넓으니 여기서는 조선 후기에 나타난 민화만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하게 보는 민화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입니다.
당시 민중들이 종교생활이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용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 안팎을 단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쁜 귀신을 쫓는다거나 복을 빌기 위해서도 이 민화를 그려 붙였습니다. 지금은 이런 민화들이 장식용으로만 쓰이지만 예전에는 모두 실생활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기 책꽂이 그림이 있습니다. 이것은 ‘책거리 민화’라 불리는데 선조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려서 방 안에 놓았을까요? 책이 이렇게 방 안에 많이 있으면 그 방의 주인은 아주 높은 학덕을 지닌 학자처럼 보입니다. 조선은 유교 사회였기 때문에 학덕이 높은 사람을 가장 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책이 아주 귀했습니다. 따라서 책을 이렇게 많이 소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책이 가득 찬 책꽂이를 그려서 방안에 놓은 것입니다. 이 책거리 그림이 있는 방 안을 상상해보십시오. 격조가 한결 높게 보일 겁니다. 이 민화는 대략 이런 의도에서 그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다른 책거리 민화를 보십시오. 얼핏 보면 책을 놓는 선반이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선반은 없고 책이 둥둥 떠다닙니다. 파격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꽉 막힌 질서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책꽂이의 질서를 거부하고 책들을 자유분방하게 흩뜨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책들이 무질서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나름대로 질서가 있으면서 동시에 자유롭습니다. 한국 예술, 그중에서도 특히 민예는 이렇게 격외적인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일본 최고의 지성은 이런 조선의 그림을 두고 ‘불가사의한 조선 민화’라고 했답니다.
이 이외에도 민화는 종류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민화를 분류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우선 종교적 민화와 비종교적 민화로 구분할 수 있지요. 종교적 민화에는 무교(巫敎)의 신들을 그린 무신도나 절에 있는 그림들이 포함됩니다. 이중에 무신도는 특히 한국적인 그림이라 재미있습니다.
한국의 민중들이 좋아했던 작은 신들을 그렸는데 모두 이웃집에 있는 아저씨, 아주머니들 같습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민화는 특정 장소에 가야 볼 수 있지만 이것보다 더 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쓰이던 그림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게 앞에서도 본 ‘까치 호랑이’ 그림입니다.
여기 호랑이들을 보십시오. 이 호랑이는 일명 ‘바디빌딩 호랑이’라고 합니다. 가슴이 불룩한 게 흡사 바디빌딩을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종이에만 이런 민화를 그린 게 아니었습니다. 사진에서처럼 도자기에도 이런 호랑이를 그려놓았습니다. 도자기 분야에서는 이 호랑이를 ‘바보 호랑이’라고 부른다는데 제가 보기에는 바보 같지 않고 천진난만한 우리 민중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꽃이나 새, 혹은 곤충 등을 그려 장수를 기원한다든가 복을 기원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환갑잔치 같은 것이 열리면 민간 화가를 초청해서 이런 그림(화조도)을 그리게 했답니다.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 중에는 십장생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등용문을 상징하는 그림인 잉어가 뛰어오르는 그림은 물고기가 나오는 대표적인 민화입니다.
물론 산수를 그린 민화도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는 민화는 아마도 문자도(文字圖)가 아닐까요? 효(孝)나 충(忠)과 같은 글자를 아주 아름답게 장식해서 써서 걸어놓는 것이지요. 이것은 물론 특히 어린이들을 교화하기 위해 만든 그림입니다. 이전에는 장터에서 이런 문자도를 가죽으로 그리는 이른바 혁필화(革筆畵)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위대한 문화유산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 민화가 유행한 시대적 배경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신분제도의 폐지와 함께 일반 백성들이 예술과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양반층만이 예술과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후기에는 이러한 제한이 풀리면서 일반 백성들도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민화 예술의 발전을 촉진하였습니다.
둘째는 유교적인 세계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유교 사상이 국가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러한 사상에서는 세속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풍경과 인물을 그린 민화는 유교적인 세계관에 부합하였고, 이러한 특징은 민화 예술의 발전과 유행을 뒷받침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민화가 유행한 배경은 신분제도의 폐지와 일반 백성들의 예술 참여 확대, 그리고 유교적인 세계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참고하셔서 도움 되샸길 바래용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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