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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그를 총애하던 정조가 1800년 승하하고 이듬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도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천주교와 거리를 두고 생활했던 점이 확인되면서 유배로 감형되어 경상도 장기(지금의 포항시 장기면)로 유배되었다. 같은 해 10월 황사영의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정약용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전라도 강진으로 다시 유배되었다. 강진으로의 유배는 18년 귀양살이의 시작이었다.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된 처음 8년간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다산초당(茶山艸堂)을 거처로 삼고 외가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귀양살이를 할 수 있었다. 정약용과 함께 유배를 떠났던 형 정약전은 전라남도 나주의 북쪽에 있는 율정(栗亭)까지 같이 이동한 후,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출처: 지역N문화 정약용의 남도유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