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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소보로크림빵
단팥소보로크림빵23.09.11

파독 광부하고 간호사는 언제부터 보냈나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외화벌이겸 직장에 돈을 벌기 위해서 독일로 광부하고 간호사 인력을 대거 보냈다고 하던데 언제부터 파견을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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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부 파견은 1963년 12월 16일 한국정부의 임시고용계획에 관한 한국노동청과 독일탄광협회 간의 협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간호 인력의 독일 송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나 이 시기의 송출은 기독교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민간교류 형식이었고 이후 1966년 독일 마인츠 대학의 의사였던 이수길 박사의 주선으로 대규모 간호사 파견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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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파독근로자의 파견 시기와 파견인원은 출처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집계인 2008년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는 1963~1977년 사이 광부 7,936명, 간호요원 11,057명 및 기능공 931명 등 총 18,899명으로 밝히고 있으나, 1963년 이전 주로 민간 알선을 통해 파견된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의 파견은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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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0년대 제 2차 세계대전의 패방을 극복하고 경제부흥에 성공한 독일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의료 요양 등의 국민복지시스템 분야에 외국인 노동력 유입이 절실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한국은 경제개발정책을 추진중이었고 외화확보가 절실했습니다. 서로 원하는 바가 잘 맞아 1961년 두 나라는 경제기술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고 기술협력과 차관 고여와 함께 광부 간호인력의 파견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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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올해는 ‘파독(派獨) 광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3년 12월 22일 서독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한국인 파독 광부 1진 123명이 처음 독일 땅을 밟았습니다.

    "파독" 은 독일로 파견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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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1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여 명이 지원할 정도로 당시 한국의 실업난은 심각한 상태였다. 3년 계약의 파독광부들에게는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높은 수입이 보장되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로 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광산 노동의 경험이 없던 초심자였기에 크고 작은 부상과 후유증에 시달렸다.


    광부의 파견은 1963년 12월 16일 한국정부의 임시고용계획에 관한 한국노동청과 독일탄광협회 간의 협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협정에 따르면 한국 광부의 파견조치는 “한국 광부의 탄광지식을 향상시켜 한국 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독일의 광부인력 부족현상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국이 독일에게 요청했던 한국 재건지원의 약속 이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자 했던 독일정부의 의도와 실업난과 외화획득을 위해 해외인력수출을 원했던 한국정부의 이해가 부합되어 이루어진 조치였다.


    정확한 의미에서 간호 인력의 독일 송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송출은 기독교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민간교류의 형식이었다. 이후 1966년부터 독일 마인츠 대학의 의사였던 이수길 박사의 주선으로 대규모 간호사 파견이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 한국해외개발공사가 간호 인력의 모집과 송출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만 226명의 간호 인력이 독일에 파견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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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6년부터 독일로 간호사와 광부들을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한 해외인력수출의 일환으로 한국정부에서 1만여 명의 간호사와 광부 1만여명을 독일(서독)에 파견하였습니다. 1960년대 한국은 심각한 실업난과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외화부족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였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최고의 자원은 인력이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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