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은 고려의 목적은 연운 16주를 차지하려는 송과 대립 과정에서 사전에 배후 세력인 고려를 제압하려 했던 전쟁입니다. 거란은 고려와 전쟁 중에도 송과 대립하고 있어 전력이 양분되고, 군사적 및 인적 자원의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또한 고려의 적극적인 저항과 유능산 지휘관이 있어 거란이 고려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10세기 초에 발해를 무너뜨리고 중국 북부와 만주를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인 거란은 주변국들과 화친을 맺고자 하였으며 고려에도 사신과 낙타 50필을 보냈으나 고려 태조 왕건은 사신들은 유배를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서 굶어죽게 만들었습니다. 거란은 송나라와 결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뒷문 단속 차원에서 고려를 침략하게 됩니다. 제1차는크려 성종 때인 993년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했으나 서희장군의 담판으로 오히려 강동 6주를 고려가 취하게 됩니다. 2차는 현종 1년인 1010년에 강조정변을 빌미로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해왔으나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을 떠나고 후에 입조를 약속받고 거란군은 물러가게 됩니다. 3차는 1018년에 현종의 입조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이유로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왔으나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살인 돌아간 거라군은 수천명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