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효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 당파싸움으로 전쟁가능성을 낮게 봄
당시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단 반대를 위한 반대에 가까운 상태였는데요.
그러다보니 전쟁위험을 주장하는 당파가 있었지만, 경쟁 당파는 이를 무조건 반대하여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상당이 희석된 상태였습니다.
2. 반역 모의 등 내분
당시 임진왜란 이전에도 선조의 지지율이 매우 높지는 않은 상태였기에 반란을 모의하는 세력이 종종 발생하곤 하였습니다.
때문에 대규모 공세를 방어하기 위한 군대보다는 소규모 반란진압에 중점을 둔 군대로 운영하다보니, 정작 대규모 군대가 처들어오자 소규모 반란진압에 특화된 군대는 이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3. 군 내 비리
고위 장수들은 병사들을 훈련시켜 정예화하기보다는 고급 약재와 해산물을 채취하는 등 단순한 노동에 투입하곤 했습니다.
때문에 군대의 훈련수준은 처참했습니다.
4. 준비를 하긴 했으나,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함
그래도 일본에서 계속 수상한 정보들이 들어오니, 나름 성벽을 쌓고 유능한 장수들을 배치하는 등 나름의 준비는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준이 대략 최대 5만명 정도의 침공을 막아내는 수준에 기반하여 방어계획이 짜여졌고. 10만이 넘는 병력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예상치를 훌쩍 넘는 대규모 병력을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