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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2.08.29

옛날에 불교가 국교였다가 유교로 어느순간 바뀌었는데 왜 그랬던건가요?

불교가 주축이었던거 같은데

조선시대오면서 유교로 바뀐거 같은데요.


이렇게 국교가 한순간에 바뀐 이유가 있을까요?

기존에 익숙한 관습적인 종교가 쉽게 안바뀔것 같아 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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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국교는 불교였으나 고려가 패망하고 건국된 조선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주축세력은 이성계 가문과 더불어 정도전을 필두로 한 신진사대부로, 이들 신진사대부는 당시 명으로부터 들어온 성리학을 공부해오던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를 기반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자신들의 가치를 공고히 하여야 새롭게 건국된 국가에서 고려시대처럼 무인들이 주축이 되지 않고 자신들이 주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려시대 불교는 여러 차례 종교를 넘어 과도하게 비대해져 정권과 결탁하여 나라 재정을 갉아먹고, 백성들을 황폐케하며, 결국 나라를 어지럽혀 고려를 패망하게 한 큰 이유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패망의 이유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섬기는 성리학의 나라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백성부터 나라 운영 전반 불교의 색채를 빼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전국의 사찰을 줄이고, 승려에게 주던 많은 혜택들을 폐지하였고, 국가재정의 지원도 차단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유교사상에 입각한 생활방식을 각인시킴으로서 그들의 생각대로 나라를 운영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뒷전에 두고 유교를 앞에 내세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뜻은 좋았으나 이러한 유교사상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활용하였고, 나아가 불교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학문도 나라의 기틀이 되기보다는 자신들의 사학 패거리를 만들어 현재의 패거리 정치 같은 붕당정치를 낳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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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정말 많이 숭배되었죠 그래서 절도 많았고 스님도 지위가 상당히 높았고 지금처럼 절이 산에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죠. 스님의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부패가 심할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조선시대를 세운 이성계는 그때 거의 반역자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고려와 다른 나라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서, 불교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절도 많이 사라지고 스님이라는 계급이 사라진겁니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던 절도 산속으로 들어가게 됬고요. 숭유억불정책은 바로 이성계가 조선의 국교를 유교로 삼으면서 썼던 정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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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습니다. 그러나 고려말 불교의 폐단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이에 반감을 갖고있던 이성계와 성리학을 공부한 신진사대부를 중심으로 조선이 건국되며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사회로 전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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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육아·아동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신흥무인과 신진사대부가 중심이 되어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입니다. 신진사대부는 유학 중 성리학을 수용한 이들인데, 불교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정도전은 불씨잡변이라는 책을 써서 불교를 나라를 좀억는 해악으로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여기에는 고려 후기 불교의 타락과 세속화도 한몫했습니다. 사원은 왕실이나 귄세가에게 막대한 토지와 노비를 받은 대지주로 술 등을 만들어 상업활동을 하는 등 민생을 침탈하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은 불교를 철저히 탄압했으나 왕실에서는 불교신앙을 가지고 후원한 사례는 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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