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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나비2022
굳센나비202222.09.25

이육사의 필명은 왜 육사인가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육사의 본명이 이육사가 아니라고 하는데요.

그런 이육사라는 필명은 왜 만들었을까요?

그가 지은 대표적인 작품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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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명은 이원삼 이원록 이활 호는 육사에서 이름을 개명 이육사로 했다고 합니다.

    이육사라고 호를진 것은 1927년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가 되면서 3년의 옥고를 치루면서 수인번호 264 가 이육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시는 잘 알다시피 광야 청포도 등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육사 즉 원래의 이름은 이원록이며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촌리 881에서 태어났으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지요 1925년 20대 초반에 대구로 이사하여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형과 함께 투옥되었는데 수인 번호가 264번 이어서 이름을 이육사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이육사 자신은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지만 사후에 당대 대표적인 문학 평론가인 둘째 동생 이원조가 형의 시를 모아 1946년 육사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청포도" 란 시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준비해 두렴"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본명), 이원삼(이명)입니다.

    1927년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인 264에서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입니다. 이육사라는 이름은 투옥됐을 때 수형번호가 264번이어서 이를 자신의 필명으로 사용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광야], [절정]이 있습니다.

    1943년 북경으로 압송되어 수감중 옥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입니다.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받은 죄수번호가 264이여서 호를 육사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광복때까지 독립의지를 굽히지 않고자 한 열정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는 광복 때까지 변절하지 않고 독립운동과 절제된 시를 계속하였는데, 대표적인 시는 광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