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정의 문란으로 조선의 백성들은 겨우 목숨만 이어갔고 이런 상황에서 진주의 백낙신이라는 관리가 세금을 몰래 빼돌리고 그 세금을 메우기 위해 다시 또 세금을 걷으려했습니다. 그러나 홍경래의 난을 경험한 백성들은 뭉치면 뭔가를 해낼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만히 있지 않았으며 수만명의 농민들은 진주 관청을 향해 몰려가 백낙신과 더불어 농민들을 괴롭히던 하급 관리들, 양반 지주의 집을 허물고 불살랐습니다.
농민들의 반란은 진주에서 그치지 않고 경상도 진주에서 시작된 민란은 충청도, 전라도 까지 번지며 이 해가 임술년 이어서 임술 농민 봉기라 합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조선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려 했고 정부에서는 암행어사를 파견해 백성들을 괴롭히는 관리들을 가려내기로 했으며 관청을 만들어 삼정의 문란을 철저히 다루려 하지만 세도 정치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농민 봉기도 한계가 있었는데 세도 정치를 바꾸거나 조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방향까지 갔으나 대부분 정부에서 달래기 용 혜택을 주면 그것에 만족하고 봉기를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농민 봉기를 통해 백성들의 사회 의식은 더욱 성장했고 조선의 양반 중심 사회는 무너져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