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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81
모니카8123.08.28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가 달랐나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의 언어가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통역사가 필요했을지도 궁금하네요 특히 신라와 고구려는 달랐을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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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때의 언어와 지금의 언어는 다를 수 있지만 약간은 억양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어는 변함이 없습니다.

    서로가 같은 언어를 썼지만 사투리 즉 억양만 달랐고 지방마다 고유한 사투리가 지금까지 변모하면서 온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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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8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시점부터 국어의 역사는 고대국어, 중세국어, 근대국어, 현대국어의 네 시기로 구분된다. 고대국어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가 패망하기까지의 약 1,000년 동안의 국어를 지칭한다. 그러나 신라어를 제외하고는 아주 단편적인 기록밖에 남기지 않아 그 전반적인 모습은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다. 따라서 삼국 시대의 언어생활은 신라어로 대표된다.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함께 쓰이고는 있지만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그 모습을 알기 힘들고, 그나마 자료가 많은 신라어를 통해 모습을 추측해 보는 것이다.

    이두(吏讀)와 향찰(鄕札)을 통해 신라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신라어를 표기하기 위해 창안된 표기법으로, 신라어를 파악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두는 문법형태의 파악에 도움이 되고, 향가의 표기에 쓰이던 향찰은 단어는 물론 문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인명, 지명, 관명 등의 고유명사 표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라어의 정확한 음운체계는 밝혀져 있지 않다. 대개 자음체계에 있어 평음과 유기음의 대립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국어의 ‘ᄫ’ 및 ‘ᅀ’와 반드시 같은 음가는 아니더라도 ‘ㅂ’ 및 ‘ㅅ’과 구별되는 음운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ㄹ’도 [r]과 [l]로 구별되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음체계는 대개 7모음 체계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중모음은 오히려 중세국어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어의 문법적 특징은 이두와 향찰 자료에서 단편적으로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 주격조사로 ‘이’(伊, 是)가 속격조사로 ‘imagefont/의’ 및 ‘ㅅ’, 대격조사로 ‘ㄹ’(乙)과 ‘흘’, 구격조사로 ‘루’가 쓰여 중세국어와 매우 흡사하다. 특수조사로는 ‘ㄴ’, ‘두’ 등이 보이는데 이 역시 중세국어와 일치한다. 활용어미도 몇 개 확인되는데 관형사형 어미‘-ㄴ’과 ‘-ㄹ’, 접속어미로 ‘-고’, ‘-며’, ‘-다가’ 등이 확인되며, 종결어미로 평서문의 ‘-다’(如), 의문문의 ‘-고’(古)가 확인된다. 경어법의 선어말어미로 주체경어법의 ‘-시-’와 객체경어법의 ‘-imagefont-’(白)이 쓰였음을 볼 수 있다.


    단편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지만 신라어는 중세국어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어가 근간이 되어 중세국어가 이루어진 것이니 신라어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현대국어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특히 백제어의 경우 몇 가지 예를 찾기도 쉽지 않다. 〈삼국사기 지리지〉 등에서 불(火)을 ‘부리’, 곰을 ‘고마’, 돌을 ‘돌악’, 새를 ‘사’, ‘맑-’을 ‘믈거’라고 한다는 한정적인 단어의 모습을 찾아냈을 뿐이다. 적은 자료이기는 하지만 백제어는 신라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두 언어가 다 같이 한계(韓系)로서 국가적으로는 갈려 있었지만 언어적으로는 거의 같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어는 백제어보다는 많은 자료를 남기고 있는데, 주로 지명이나 고유명사의 표기에서 추출할 수 있다. 물(水)을 ‘imagefont’, 성(城)은 ‘홀’, 산은 ‘달’, 바위는 ‘파의’, 골짜기는 ‘단, imagefont, 돈’, 납은 ‘나믈’, 흙이나 땅은 ‘imagefont, 나, 노’라고 하였다. 고구려어의 수사는 매우 특징적인데, 수사의 형태가 신라어나 중세국어와는 다를 뿐만 아니라 고대 일본어의 mi(3), itu(5), nana(7), tӧwo(10)과 일치되기 때문이다. 이 수사를 비롯하여 고구려어에는 고대 일본어와 일치를 보이는 어형이 꽤 있어 일본어가 고구려에서 건너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고구려어가 신라어나 중세국어와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출처 :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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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시대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한글이 없던 시대이니 한자를 기본으로 썼습니다. 기본 글자가 한자다 보니 한문으로 된 단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다만 말은 한글 이였고 삼국 간의 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그 이유는 삼국 시대 그 어떤 기록에도 서로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기 떄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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