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왕들의 어진을 그린것이 왜 남아있지않나요?
조선에서 국왕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이 중에서 현재 온전히 남아있는 초상화는 이성계와 세조 영조 철종의 초상화뿐이라고하는데 나머지 초상화는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 훼손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질문자님이 말씀하신대로 현재 어진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어진은 태조, 원종, 영조 2점, 순조, 문조,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 등이다. 이 중 영조의 어린 시절을 그린 연잉군의 어진만 도사본이고, 나머지는 원본을 베껴서 그린 그림입니다. 원래는 세조, 숙종, 정조 등의 어진도 더 있었으나, 1954년 12월 10일 임시로 부산으로 옮겨뒀을 때 화재로 인해 대부분 불에 타 없어지고 현존하는 어진만 남은 것입니다. 한편 현존하는 어진 중에서도 문조의 어진은 얼굴 부분 대부분이 불에 타 버렸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아시다시피 초상화 라는거 자체가 임금 이외에는 제작을 엄격히 금지할 정도로
초상화를 제작하는거 자체를 금기시하고 왕의 어진은 국가사업으로 추진될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초상화가 대상을 신격화 할수 있어 제작을 하더라도 아무나 볼수 없게 관리를 하였습니다.
그런 임금의 어진을 많이 찾아볼수 없는 이유는
예상하셨겠지만 대부분 소실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전기의 어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거의 불에 타버렸고
조선후기의 어진은 한국전쟁당시에 거의 소실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어진은 개국 초부터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실록에도 태조 이후 역대 왕과 왕후의 어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인종의 경우 생전에 어진을 그리지 말라 지시했고, 그 지침으로 사후에도 어진을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때 궁궐이 타면서 태조 어진, 문종 어진, 세조 어진 , 덕종 어진만 남았다고 전해지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한양 수복 전후로 태종과 세종 어진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당시 태종의 어진은 굉장히 낡고 삭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전해지며 세종대왕 어진은 강화에서 옮겨와 봉안했다는 기록만 있고, 인조 대의 기록에서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운 선왕들의 어진을 강화도로 옮길 것인이 논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아 병자호란때 기타 다른 왕들의 어진들과 함께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란 후 임금들은 나라가 혼란스러워인지 몰라도 어진을 남기지 않았는데 선조는 어진을 그리기 싫다며 거부, 인조 , 효종, 현종, 경종은 어진을 그렸다는 기록이 없어 이들도 어진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진이 적게 남아있는 이유는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조선 전기의 어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불에 타버렸고,
그리고 조선 후기의 어진은
한국전쟁기에 거의 소실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산 용두산화재때 옆에 있던 문화재.. 즉 조선왕의 어진이 함께 타 버리는 엄청나고 안타까운일이 일어나서ㅜ지금 조선왕의 어진이 없습니다...ㅠㅠㅠ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는 유독 전쟁등으로 인해 문화재가 많이 소실된 나라 중의 하나 입니다. 왕들의 어진들도 6.25 전쟁중 부산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불타버렸다고 하거나 혹은 조선 전기 임금들 어진도 임진왜란 중 소실되어 버려서 태조나 세조 어진 (세조 어진도 그나마 현대 모사본) 외에는 남아 있지 않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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