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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3.08.07

장보고는 반란을 일으킨것이 맞나요?

당시 청해진에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있었던 장보고가 실질적인 반란행위를 보이기도 전에 반란을 명목으로 암살을 당했는데 그는 실제로 반란을일으킨것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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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0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시기가 장보고가 사망한 때라고 합니다.

    문성왕 8년(서기 846) 봄, 청해(淸海)의 궁복이 그의 딸을 왕비로 받아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청해진에 근거지를 두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조정에서는 그를 토벌한다면 생각하지도 못한 후환이 있을 것이 염려스럽고, 그를 그대로 두자니 그 죄를 용서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근심하였습니다. 무주 사람 염장(閻長)은 용감하고 힘이 세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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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만들기위해 김우징(신무왕)과 함께 통일신라 민애왕을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4개월만에 신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 김경응문성왕이 왕위에 오르지만 다른귀족들이 청해진에서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암살합니다.

    장보고의 딸과 왕자의 혼인이 실패해버렸고 이에 화난 장보고는 신분제와 반대한 귀족들을 없애겠다는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역사서에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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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것은 맞는 것 같고 다만 그 이유에 대해 '권력욕이 강해져서'라는 주장도 제기하긴 하지만, 삼국유사의 기록을 따른다면 장보고로써는 자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는 신라왕의 약속을 이행 받지 못했기에 응당 받아야 할 정당한 약속 이행을 문성왕에게 요구한 것일 뿐이었고, 이에 대해 조정에서 진골 귀족들의 반대를 이유로 묵살했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귀족 대신들은 장보고를 천한 바다 섬 사람이라고 인신 공격성 발언까지 해대며 그의 딸이 왕비감으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극렬히 반대하여 무산되고 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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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45년 딸을 왕비로 삼을 약속이

    군신들의 반대로 좌절되어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이듬해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刺客) 염장(閻長)이 거짓 항복해 오자 깜박 속아서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그를 맞아들였다가 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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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보고는 실제로 반란을 계획하였습니다. 장보고는 고려시대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신라와의 연합을 통해 고려를 통일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고려의 왕위를 차지하고자 했으며, 여러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켜 고려에 대한 통치권을 강화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장보고는 1170년대에 여러 번의 반란을 계획하고 진행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천리장사'라고 알려진 반란입니다. 이 반란은 고려의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결집시키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천리장사 반란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장보고는 사형당하였습니다.


    이러한 반란 계획은 장보고의 정치적 야망과 고려 왕조에 대한 독립적인 통치권 확보를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반란의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으며, 장보고의 역사는 반란의 주도자로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답변에 도움이 되셧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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